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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 최초 갑진보 서문 甲辰海西族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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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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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 갑진보甲辰譜 서문序

幸州奇氏世譜者,奇君命赫所編也。一日,袖其譜視余曰:「吾先本自殷太師。太師東封後,至四十代孫否,始以箕爲姓。子準移都金馬郡,號馬韓王。馬韓末,有孱孫三人,曰親爲鮮于氏,曰誠爲幸州奇氏,曰諒爲上黨韓氏。此吾奇氏所源,而其後代有聞人,或以勳業著,或以孝廉擧,或以道德文章名,偉績懿行相望,載簡冊,爲世大姓。
顧舊有世譜,失而不傳。而年代浸遠,子孫浸繁,使祖先遺烈、雲仍後派,將無所考信,此罔非余不肖孫責。遂慨然謀諸同宗,蒐輯放失,重修其系牒。自鼻祖平章事諱純祐以後,二十二世子孫,無內外悉錄之。仍幷以先代誌狀諸文,編爲二卷。旣成,又各出力鋟梓,以壽其傳。子盍識之?」
余受而卒業曰:諾。子之譜,自近而及遠,由親而至疏,博考廣詢,窮探遍索,積以歲月之久,費以工役之鉅,而能卒有成焉。其用意亦已勤矣!噫!觀是譜者,豈不有孝悌之心油然而生者乎?吾見世之人,雖名爲士大夫者,往往忘其先,自數世而上,或不詳其名字,況於族屬,其有能厚而不薄者耶?聞吾子之風,亦可以少愧矣。
昔程夫子云:管攝天下人心,收宗族,厚風俗,須是明譜系。嗚呼!若吾子者,可謂能是道矣。其亦可敬也已!余於奇氏,亦外裔也。旣嘉子之志,樂其譜之成也,於是乎書。

    [崇禎紀元後再甲辰(1664년)] 顯宗五年 李漢命 修撰


행주기씨세보(幸州奇氏世譜)는 기명혁(奇命赫, 1627~1718) 군이 엮은 것이다. 하루는 그가 소매에 넣어가지고 온 그 보첩(譜牒)을 내게 보여주며 말하였다.,
우리 집 선대는 본디 은태사(殷太師 : 기자箕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태사께서 동방(조선)에 봉해진 후 40대손 비(否)에 이르러 비로소 기(箕)를 성으로 삼았습니다. 그 아들 준(準)이 금마군(익산)으로 도읍을 옮겨 마한왕(馬韓王)이라 불렀습니다. 마한의 말기에 잔약한 세 명의 후손이 있었는데, 친(親)은 선우씨가 되었고, 성(誠)은 행주 기씨가 되었으며, 량(諒)은 상당 한씨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씨의 기원입니다. 그 후대로 이름난 분들이 계셔서 공훈과 업적으로 이름을 드러냈고, 어떤 분은 효성스럽고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추천되었으며, 어떤 분은 도덕과 문장으로 이름나 위대한 업적과 아름다운 행실이 이어지니, 역사책에 실려 세상의 큰 성씨가 되었습니다.
생각건대 옛날에 세보가 있었으나 실전되어 전하지 않습니다. 연대는 점점 멀어지고 자손은 번성하는데, 조상께서 후세에 남기신 공적을 후손들이 장차 계파를 상고하여 확인하여 믿게 만들 곳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저 같은 불초한 자손의 죄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마침내 개탄스럽게 느껴 여러 일가사람들과 의논하여, 흩어지고 잃어버린 옛 족보를 수집하고 그 계첩(系牒)을 다시 엮어 내었습니다. 비조(鼻祖)이신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이름이 순우(純祐)이신 할아버지 이후 22세 자손까지 내손과 외손을 가리지 않고 모두 수록하였습니다. 아울러 선대의 지장(誌狀 : 행장과 묘지명) 등 여러 글을 합쳐 이미 두 권으로 엮어 완성하였습니다. 또한 각자 재물을 내어 모은 자금으로 나무판에 내용을 새겨 인쇄하여 그 전함이 영구히 가도록 하였으니, 그대가 어찌 발문을 써주지 않겠습니까?
내가 받아 다 읽고 나서 말하였다.
좋습니다. 그대가 엮은 족보는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 미치고, 친밀한 곳에서 소원한 곳에 이르기까지 널리 상고하고 두루 물으며 깊이 끝까지 탐구하고 구석구석 찾아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걸렸고 막대한 공력을 들여 마침내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니, 그 마음 씀이 참으로 정성스러웠습니다!
아! 이 족보를 보는 자가 어찌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불길처럼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내가 세상 사람들을 보니, 비록 사대부라 이름하는 사람들도 왕왕 자기 선조를 잊어버려, 몇 대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名)과 자(字)같은 조상의 이름조차 잘 모르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하물며 일가친척에 대해서야 어찌 당연히 후하게 대하고 박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즘 사대부들조차 자기 조상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가문과 혈족에 무심한데, 친척들을 두텁게 돌보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는 뜻)
더군다나 종족(宗族)이 당연히 할 수 있고 후손이 많아서 그 수가 적지 않은 자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대의 풍모를 들으니 (그렇지 못한 자들은) 조금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옛적에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하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종족을 화합하며 풍속을 두텁게 하려면 반드시 보계를 밝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대와 같은 이는 이 도를 참으로 잘 실행한다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존경할 만합니다.
나 또한 기씨 집안의 외손으로서 이미 그대의 뜻을 가상히 여기고 족보가 완성됨을 즐거워하며 이 글을 씁니다.

1664년(현종 5년) 이한명(李漢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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