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6년 4차 갑신보발丙申譜跋
페이지 정보
작성자기회근
본문
1836년-4차-丙申譜跋
右我幸州奇氏世譜新本,凡吾宗源源本本、派分枝別,皆可覽於此而瞭然矣。卷且成,未嘗不摩挲歎息曰:嗟呼!此可爲繼先垂後之一事也耶!
盖吾先牒其可徵者,近古之甲辰、戊辰,暨甲午譜是已。夫以吾姓系之綿遠,其支裔之散在八域者,大抵生死不相識,其夐然漠然,不但服盡而情盡而已。今吾欲明吾之所自出,則如太史氏之世表足矣;詳吾之所與親,則如眉山氏之族譜亦云可矣。
而吾先世之修明譜牒也,何苦而必期於廣搜博採,不間親疎,前後一拔也?是必非好爲煩冗,必有眞情遠意存乎其間。深思而得之,孝悌之心眞可以油然而生矣。然而知此意者,不能人人皆然,故近年修譜之議,往往倡獨而和寡。不得已而出於賢乎已之策,則又有每派分裂之論焉。
不肖誠不忍前人百年之緖業,一朝廢缺而不復完也,遂乃犯風觸雨,越湖踰海,費數年收緝之力,而成一日剞劂之功。吾雖不敢自告其勞,而諸宗莫不憫其勤也。
雖然,此豈吾一人之力所能獨辦?盖有族叔象儉氏及族弟生員在善爲之主張論議,經幹事務。而若其凡例取捨,則族姪叅奉正鎭實集衆論而考定焉,此亦不可以不之書也。
盖是譜也,有上世世系,則世表之類也;有各派分編,則蘇譜之法也。謹宗支、嚴嫡庶,則有宗法之遺意;傳疑信、不沒實,則近史家之體裁。庶幾有綱有條,粗成文字頭面。凡此皆將以爲述前蹟、傳來世之道,而不有一毫私意也。諸宗俾余有一言于卷末,遂敢以所感於衷者,及其所見識之如右云。
後孫 在學
앞(右)의 우리 행주 기씨 세보(世譜) 신본(新本)은 우리 가문의 뿌리와 근원, 갈라져 나간 파와 가지들을 모두 여기서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이 장차 완성되려 함에 어루만지며 감탄하기를 아! 이것이야말로 선조를 잇고 후손에게 전해줄 하나의 큰 사업이로다! 라고 하였다.
대저 우리 가문의 족보 중 고증할 수 있는 것은 근세의 갑진보(1664), 무진보(1688) 및 갑오보(1774)이다. 우리 성씨의 계통이 워낙 멀리 이어져 오다 보니, 팔도에 흩어져 사는 후손들은 대체로 나고 죽는 것을 서로 알지 못한다. 그 멀고 아득함이 단지 복제(服制, 상복 입는 거리)가 다한 것뿐만 아니라 정도 다해버린 지 오래다.
이제 내가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밝히고자 한다면 사마천(太史氏)의 '세표' 형식이면 족할 것이요, 나와 친한 범위를 상세히 하고자 한다면 소순(眉山氏)의 '족보' 형식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께서 족보를 닦으실 때 무엇 때문에 고생스럽게 반드시 널리 수집하고 넓게 채집하여 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전후를 하나로 묶으려(一拔) 하셨겠는가? 이는 반드시 번거롭고 복잡한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필시 그 사이에 참된 정과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깊이 생각해보면 효도하고 우애하는 마음이 진실로 우러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뜻을 아는 사람이 모두와 같지는 않기에, 근래에 족보를 고쳐 짓자는 논의가 있어도 왕왕 혼자만 주장하고 화답하는 이가 적었다. 부득이하게 '자기들끼리만 잘해보자'는 대책이 나오게 되면, 또 각 파별로 족보를 갈라 만들자는 논의가 생겨나기도 한다.
나 불초한 재학은 진실로 앞선 분들이 백 년 동안 이룩해온 가업이 하루아침에 폐지되어 다시 완전해지지 못하는 것을 차마 견딜 수 없었다. 이에 곧 비바람을 무릅쓰고 호남과 영남을 넘나들며(越湖踰海) 수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편집하는 공력을 들여, 마침내 하루아침에 인쇄하는 공을 이루게 되었다. 내가 비록 내 수고를 스스로 말하지는 않으나, 문중의 여러 사람이 그 부지런함을 가련하게 여겨주지 않음이 없었다.
비록 그러하나 이것이 어찌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독단적으로 해낸 일이겠는가? 대저 족숙(族叔) 상검(象儉) 씨와 족제(族弟) 생원 재선(在善)이 주장을 세워 논의하고 사무를 주관하였다. 그리고 범례를 정하고 취사선택하는 일에 대해서는 족질(族姪) 참봉 정진(正鎭)이 실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고증하여 결정하였으니, 이 또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저 이 족보에 상세(上世)의 계보가 있는 것은 세표의 종류요, 각 파별로 나누어 엮은 것은 소씨보(蘇譜)의 법식이다. 종가와 지손을 삼가고 적자와 서자를 엄격히 한 것은 종법(宗法)의 뜻이 남아 있는 것이요, 의심스러운 것과 믿을 만한 것을 전하며 사실을 매몰시키지 않은 것은 역사가의 체재에 가깝다. 거의 강령과 조건이 갖추어져 대략 문장의 면모를 이루었다. 이 모든 것은 장차 앞선 자취를 기술하여 후세에 전하는 도리로 삼으려 함일 뿐, 한 터럭의 사사로운 마음도 없었다. 문중 사람들이 나에게 권말에 한마디 남겨달라고 하기에, 드디어 마음속에 느끼는 바와 보고 아는 바를 위와 같이 감히 적노라.
후손 재학(在學) 씀.
右我幸州奇氏世譜新本,凡吾宗源源本本、派分枝別,皆可覽於此而瞭然矣。卷且成,未嘗不摩挲歎息曰:嗟呼!此可爲繼先垂後之一事也耶!
盖吾先牒其可徵者,近古之甲辰、戊辰,暨甲午譜是已。夫以吾姓系之綿遠,其支裔之散在八域者,大抵生死不相識,其夐然漠然,不但服盡而情盡而已。今吾欲明吾之所自出,則如太史氏之世表足矣;詳吾之所與親,則如眉山氏之族譜亦云可矣。
而吾先世之修明譜牒也,何苦而必期於廣搜博採,不間親疎,前後一拔也?是必非好爲煩冗,必有眞情遠意存乎其間。深思而得之,孝悌之心眞可以油然而生矣。然而知此意者,不能人人皆然,故近年修譜之議,往往倡獨而和寡。不得已而出於賢乎已之策,則又有每派分裂之論焉。
不肖誠不忍前人百年之緖業,一朝廢缺而不復完也,遂乃犯風觸雨,越湖踰海,費數年收緝之力,而成一日剞劂之功。吾雖不敢自告其勞,而諸宗莫不憫其勤也。
雖然,此豈吾一人之力所能獨辦?盖有族叔象儉氏及族弟生員在善爲之主張論議,經幹事務。而若其凡例取捨,則族姪叅奉正鎭實集衆論而考定焉,此亦不可以不之書也。
盖是譜也,有上世世系,則世表之類也;有各派分編,則蘇譜之法也。謹宗支、嚴嫡庶,則有宗法之遺意;傳疑信、不沒實,則近史家之體裁。庶幾有綱有條,粗成文字頭面。凡此皆將以爲述前蹟、傳來世之道,而不有一毫私意也。諸宗俾余有一言于卷末,遂敢以所感於衷者,及其所見識之如右云。
後孫 在學
앞(右)의 우리 행주 기씨 세보(世譜) 신본(新本)은 우리 가문의 뿌리와 근원, 갈라져 나간 파와 가지들을 모두 여기서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이 장차 완성되려 함에 어루만지며 감탄하기를 아! 이것이야말로 선조를 잇고 후손에게 전해줄 하나의 큰 사업이로다! 라고 하였다.
대저 우리 가문의 족보 중 고증할 수 있는 것은 근세의 갑진보(1664), 무진보(1688) 및 갑오보(1774)이다. 우리 성씨의 계통이 워낙 멀리 이어져 오다 보니, 팔도에 흩어져 사는 후손들은 대체로 나고 죽는 것을 서로 알지 못한다. 그 멀고 아득함이 단지 복제(服制, 상복 입는 거리)가 다한 것뿐만 아니라 정도 다해버린 지 오래다.
이제 내가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밝히고자 한다면 사마천(太史氏)의 '세표' 형식이면 족할 것이요, 나와 친한 범위를 상세히 하고자 한다면 소순(眉山氏)의 '족보' 형식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께서 족보를 닦으실 때 무엇 때문에 고생스럽게 반드시 널리 수집하고 넓게 채집하여 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전후를 하나로 묶으려(一拔) 하셨겠는가? 이는 반드시 번거롭고 복잡한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필시 그 사이에 참된 정과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깊이 생각해보면 효도하고 우애하는 마음이 진실로 우러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뜻을 아는 사람이 모두와 같지는 않기에, 근래에 족보를 고쳐 짓자는 논의가 있어도 왕왕 혼자만 주장하고 화답하는 이가 적었다. 부득이하게 '자기들끼리만 잘해보자'는 대책이 나오게 되면, 또 각 파별로 족보를 갈라 만들자는 논의가 생겨나기도 한다.
나 불초한 재학은 진실로 앞선 분들이 백 년 동안 이룩해온 가업이 하루아침에 폐지되어 다시 완전해지지 못하는 것을 차마 견딜 수 없었다. 이에 곧 비바람을 무릅쓰고 호남과 영남을 넘나들며(越湖踰海) 수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편집하는 공력을 들여, 마침내 하루아침에 인쇄하는 공을 이루게 되었다. 내가 비록 내 수고를 스스로 말하지는 않으나, 문중의 여러 사람이 그 부지런함을 가련하게 여겨주지 않음이 없었다.
비록 그러하나 이것이 어찌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독단적으로 해낸 일이겠는가? 대저 족숙(族叔) 상검(象儉) 씨와 족제(族弟) 생원 재선(在善)이 주장을 세워 논의하고 사무를 주관하였다. 그리고 범례를 정하고 취사선택하는 일에 대해서는 족질(族姪) 참봉 정진(正鎭)이 실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고증하여 결정하였으니, 이 또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저 이 족보에 상세(上世)의 계보가 있는 것은 세표의 종류요, 각 파별로 나누어 엮은 것은 소씨보(蘇譜)의 법식이다. 종가와 지손을 삼가고 적자와 서자를 엄격히 한 것은 종법(宗法)의 뜻이 남아 있는 것이요, 의심스러운 것과 믿을 만한 것을 전하며 사실을 매몰시키지 않은 것은 역사가의 체재에 가깝다. 거의 강령과 조건이 갖추어져 대략 문장의 면모를 이루었다. 이 모든 것은 장차 앞선 자취를 기술하여 후세에 전하는 도리로 삼으려 함일 뿐, 한 터럭의 사사로운 마음도 없었다. 문중 사람들이 나에게 권말에 한마디 남겨달라고 하기에, 드디어 마음속에 느끼는 바와 보고 아는 바를 위와 같이 감히 적노라.
후손 재학(在學) 씀.
- 이전글1890년 5차 경인보서庚寅舊譜序 25.12.19
- 다음글1836년 4차 갑신보서丙申族譜序 25.12.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