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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보 서문 / 발문 / 후기

1890년 5차 경인보서庚寅舊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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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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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5차-庚寅舊譜序

譜有序尚矣,而吾奇氏今日之譜,雖無序可也。何者?前此吾譜凡三重刊,始於戊辰,中於甲午,大備於丙申。時則有蘆沙先生爲之裁定譜法,其規模簡而嚴,義例精而詳,綱條停當,加減一毫不得,信疑無混,可竢百世不惑。
嗣是而修者,當以子孫之後生者添錄之,誌狀之後出者增附之而已,規模義例一切因之,不容下手於其間。況其弁卷先生手筆,惇本收族之義,紹先垂後之謨,旣包涵之發明之,無纖毫未盡底蘊。今雖欲爲序,可將何辭贅之?且先生脚下,雖敢濡墨爲哉?向所謂無序而可者,此也。
先生之孫宇萬,克肖典型,文章又渾浩不窮,方且主幹譜事,必欲序之。宇萬其人也,乃以年行稍先,讓于陽衍。陽衍衰朽膚淺,不惟所不敢,實亦所不能,而奈宇萬之固讓何?
第有一言可以勵諸族而兼自勵者,修譜之義,“尊祖”二字盡之。究言之,先生之所以爲先生,亦不外是。今日同譜諸宗,不惟先生譜法是遵,一言一行,惟先生是則是傚,則祖宗之心法在是,祖宗之家風不墜,豈不休哉!
竊伏惟念吾先世偉蹟懿行、邃德厚仁,相望於卷中,有難徧擧。姑就其最著而言之:惟我貞武公,節義道學扶植三綱,師表百世;及乎文愍、文憲兩先生繼作,而貞武之遺光益顯;近又得先生(蘆沙),而兩先生之道脉尤有光焉。嗚呼!祖宗世遠,先生時近。遠則難追,近則易感。法先生乃所以法祖宗,可不勉乎!
或曰:「丙申譜廣蒐同姓以爲全譜,今則獨詳於貞武雲仍,而如海西諸派之曾所編入者,亦不收錄,此與先生之意得無異乎?」曰:「先生甞序人家譜牒有曰:『全譜、派譜各爲修譜家一道,而事簡情貫,派譜爲得。』由此觀之,今日之譜,實先生之遺志也。」
況異派之願入者許入,不願者不强,此則不專於派譜而參用全譜之規,可謂譜법之折衷者也。至若海西之路夐便絶,情有所不通,勢有所不行,何必梗爲湊合乎?願諸宗無患收族之不廣,惟患法先生之未摯焉。請書此以爲新譜序。

後孫 陽衍 校理

족보에 서문이 있음은 오래된 일이나, 오늘날 우리 기씨(奇氏)의 족보에는 서문이 없어도 괜찮다. 왜인가? 이전에 우리 족보가 무려 세 번이나 거듭 간행되었는데, 무진보(1688)에서 시작하여 갑오보(1774)에서 중간 기틀을 잡았고, 병신보(1836년)에 이르러 크게 갖추어졌다. 그때 노사(蘆沙:기정진) 선생께서 족보의 법식을 재정하셨는데, 그 규모가 간결하면서도 엄격하고 의례(義例)가 정밀하고도 상세하여 강령과 조항이 딱 들어맞았다. 터럭만큼도 가감할 수 없고 믿을 것과 의심할 것이 뒤섞이지 않아, 백 세대 뒤까지 미혹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후에 족보를 닦는 자들은 마땅히 자손 중에 새로 태어난 자를 덧붙여 기록하고, 묘지명이나 행장 중 나중에 나온 것을 증보하여 붙일 뿐이어야 한다. 규모와 의례는 일체 그(노사 선생의 법식)를 따라야 하니, 그 사이에 감히 손을 댈 수 없다. 하물며 권두에 실린 선생의 친필에는 근본을 두텁게 하고 일가를 화목하게 하는(惇本收族) 의리와, 선조를 잇고 후손에게 전하는(紹先垂後) 도모함이 이미 다 포함되어 밝혀져 있으니, 조금도 다하지 못한 속뜻이 없다. 이제 비록 서문을 쓰고자 한들 장차 어떤 말로 군더더기를 붙이겠는가? 또한 선생의 문하에서 감히 어찌 붓을 적셔 글을 쓰겠는가? 앞서 서문이 없어도 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선생의 손자인 우만(宇萬)은 그 전형(典型)을 잘 닮았고 문장 또한 넓고 깊어 끝이 없으니, 바야흐로 족보 사업을 주관함에 반드시 서문을 짓고자 했다면 우만이 적임자일 것이다. 그런데 우만은 나이가 조금 앞선다는 이유로 나 양연(陽衍)에게 양보하였다. 양연은 노쇠하고 아는 것이 얕아, 감히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로 능력이 없으나, 우만이 굳게 양보하니 어찌하겠는가.

다만 문중의 여러 사람을 권면하고 아울러 스스로를 권면할 한마디 말이 있으니, 족보를 닦는 의리는 존조(尊祖, 조상을 받듦) 두 글자로 다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선생(노사)께서 선생이 되신 까닭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늘날 족보에 참여하는 여러 종친이 선생의 족보 법식만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을 오직 선생을 법으로 삼고 본받는다면 조상의 마음법(心法)이 여기에 있고 조상의 가풍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업적과 아름다운 행실, 깊은 덕과 두터운 인자함은 족보 속에 서로 이어져 있어 일일이 다 거열하기 어렵다. 우선 가장 뚜렷한 분들만 말하자면, 우리 정무공(기건)께서는 절개와 의리, 도학으로 삼강을 붙들어 세워 백 세대의 사표가 되셨다. 문민공(기준)과 문헌공(기대승) 두 선생이 뒤이어 나오시니 정무공의 끼치신 빛이 더욱 드러났고, 최근에는 또 선생(기정진)을 얻어 두 분 선생의 도맥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아! 조상은 세대가 멀고 선생은 시대가 가깝다. 멀면 쫓기 어려우나 가까우면 감동하기 쉽다. 선생을 본받는 것이 곧 조상을 본받는 길이니 어찌 힘쓰지 않겠는가!

어떤 이가 말하기를 병신보에서는 동성(同姓)을 널리 모아 전보(全譜)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오직 정무공의 후손들만 상세히 하고 예전에 편입되었던 해서(황해도)의 여러 파 등은 수록하지 않으니, 이것이 선생의 뜻과 다르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 나는 답한다. 선생께서 일찍이 남의 가문 족보 서문에 말씀하시기를 전보(모든 파를 합친 대동보)와 파보(분파별 보)는 각각 족보를 만드는 한 방법이지만, 일이 간편하고 정이 잘 통하는 데는 파보가 낫다 라고 하셨다. 이로 보건대 오늘의 족보는 실로 선생의 남기신 뜻이다.

하물며 다른 파 중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자는 허락하고 원하지 않는 자는 강요하지 않으니, 이는 파보에만 전념하지 않고 전보의 규칙을 참용한 것으로서 족보 법식의 절충(折衷)이라 할 만하다. 더구나 해서(황해도)와는 길이 멀어 소식이 끊겼으니 정도 통하지 않고 형세도 행하기 어려운데, 어찌 꼭 막힌 것을 억지로 합치려(湊合) 하겠는가? 원컨대 여러 종친은 종족을 모으는 범위가 넓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오직 선생을 본받는 마음이 지극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청하건대 이 글을 써서 새 족보의 서문으로 삼노라.

후손 양연(陽衍) 교리(校理)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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