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5차 경인보발庚寅譜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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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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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5차-庚寅譜跋
古者譜四世,四世而譜,篤近也。一變而廣收同貫,則篤近而及遠也。其或氏族蕃衍,非一譜所能收,則派譜起焉。
若吾譜,則源流雖長而子姓不大,宜廣收同貫,如舊修三譜之爲。而海西一家,三往而不至。寧適不來,非我有咎。第念海西家,計世二十,天分也;計程一千,地分也;不能通同於吾譜,人分也。以天理則宜然,以人情則不無慊然。
百世一家,是先輩忠厚之至意;而斷自後承,以立派別者,誠有所不忍。議始凡八年,始成於今年庚寅。盖或其有來也,嗚呼無及矣。海西家別修之日,其情宜無別於我,則嗣是而同,較諸今日似反易爲力矣。
第今所謂不忍者,何心也?是心也,卽吾祖宗均視之心也。篤近者亦此心也,篤近而及遠者亦此心也。只此心無替,則向所謂百世一家者在此,同譜不同譜,又不必筭也。
繼修之議,始發於族兄鳳鎭氏,卽舊修立齋公(奇在善)之胤子。規例視舊譜,經畫且有方。及其成,已身後,又可悲夫!嗣是而完,諸宗老少咸有力焉。而始終勣勞者,族孫宇萬也。
後孫 昌錄
옛날에는 족보를 4대(四世)까지만 기록하였으니, 4대마다 족보를 만드는 것은 가까운 친족을 두텁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한 번 변하여 같은 본관을 널리 거두어 싣게 되었으니, 이는 가까운 이를 두텁게 하는 마음을 멀리까지 미치게 한 것이다. 혹 씨족이 번성하여 하나의 족보로 다 수용할 수 없게 되면 파보(派譜)가 생겨나게 된다.
우리 족보로 말하면, 원류는 비록 길지만 자손이 아주 많지는 않으므로, 마땅히 예전의 세 차례 족보(무진·갑오·병신보)처럼 같은 본관을 널리 거두어 실어야 한다. 그러나 해서(황해도)의 한 집안(파)은 세 번이나 사람을 보냈음에도 소식이 닿지 않았다. 그들이 오지 않은 것이니 우리에게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건대, 해서 집안은 대(代)를 이어온 지가 스무 세대나 되니 이는 하늘이 나눈 것(天分)이요, 거리가 천 리나 되니 이는 땅이 나눈 것(地分)이며, 우리 족보와 합치지 못한 것은 사람이 나눈 것(人分)이다. 천리로 보면 마땅히 그러한 결과이나, 인정으로 보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없을 수 없다.
백 세대 뒤에도 한 집안이라는 생각은 선배들의 충후(忠厚)한 지극한 뜻이다. 그런데 이제 후손된 자들이 스스로 끊어내어 파(派)를 별도로 세우는 것은 진실로 차마 못 할 일이었다. 논의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올해 경인년(1890년)에야 비로소 보책이 완성되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뒤늦게 소식을 전해올까 기다렸으나, 아아! 이미 때가 늦었도다. 해서 집안에서 별도로 족보를 닦는 날에 그 정(情)이 우리와 다름이 없을 것이니, 이후에 다시 합치는 것은 오늘의 일과 비교하면 오히려 힘을 들이기가 쉬울 것이다.
다만 지금 이른바 [차마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 이 마음은 곧 우리 조상님들께서 자손을 균등하게 보시던 마음이다. 가까운 이를 두텁게 하는 것도 이 마음이요, 가까운 이를 두텁게 하여 먼 데까지 미치는 것 또한 이 마음이다. 오직 이 마음만 바뀌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백 세대 한 집안]이라는 정신은 여기에 있는 것이니, 족보를 같이 하느냐 아니냐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족보를 이어 닦자는 논의는 처음에 족형 봉진(鳳鎭) 씨가 시작하였으니, 그는 지난번 족보를 닦았던 입재공(기재선奇在善)의 아들이다. 규례를 구보(舊譜)에 맞추어 계획하고 경영함에 방도가 있었다. 그러나 족보가 완성되었을 때는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으니 또한 슬픈 일이로다! 이후 족보를 완성함에는 문중의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힘을 보탰다. 그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자는 족손 우만(宇萬, 기우만)이다.
후손 창록(昌錄) 씀.
古者譜四世,四世而譜,篤近也。一變而廣收同貫,則篤近而及遠也。其或氏族蕃衍,非一譜所能收,則派譜起焉。
若吾譜,則源流雖長而子姓不大,宜廣收同貫,如舊修三譜之爲。而海西一家,三往而不至。寧適不來,非我有咎。第念海西家,計世二十,天分也;計程一千,地分也;不能通同於吾譜,人分也。以天理則宜然,以人情則不無慊然。
百世一家,是先輩忠厚之至意;而斷自後承,以立派別者,誠有所不忍。議始凡八年,始成於今年庚寅。盖或其有來也,嗚呼無及矣。海西家別修之日,其情宜無別於我,則嗣是而同,較諸今日似反易爲力矣。
第今所謂不忍者,何心也?是心也,卽吾祖宗均視之心也。篤近者亦此心也,篤近而及遠者亦此心也。只此心無替,則向所謂百世一家者在此,同譜不同譜,又不必筭也。
繼修之議,始發於族兄鳳鎭氏,卽舊修立齋公(奇在善)之胤子。規例視舊譜,經畫且有方。及其成,已身後,又可悲夫!嗣是而完,諸宗老少咸有力焉。而始終勣勞者,族孫宇萬也。
後孫 昌錄
옛날에는 족보를 4대(四世)까지만 기록하였으니, 4대마다 족보를 만드는 것은 가까운 친족을 두텁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한 번 변하여 같은 본관을 널리 거두어 싣게 되었으니, 이는 가까운 이를 두텁게 하는 마음을 멀리까지 미치게 한 것이다. 혹 씨족이 번성하여 하나의 족보로 다 수용할 수 없게 되면 파보(派譜)가 생겨나게 된다.
우리 족보로 말하면, 원류는 비록 길지만 자손이 아주 많지는 않으므로, 마땅히 예전의 세 차례 족보(무진·갑오·병신보)처럼 같은 본관을 널리 거두어 실어야 한다. 그러나 해서(황해도)의 한 집안(파)은 세 번이나 사람을 보냈음에도 소식이 닿지 않았다. 그들이 오지 않은 것이니 우리에게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건대, 해서 집안은 대(代)를 이어온 지가 스무 세대나 되니 이는 하늘이 나눈 것(天分)이요, 거리가 천 리나 되니 이는 땅이 나눈 것(地分)이며, 우리 족보와 합치지 못한 것은 사람이 나눈 것(人分)이다. 천리로 보면 마땅히 그러한 결과이나, 인정으로 보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없을 수 없다.
백 세대 뒤에도 한 집안이라는 생각은 선배들의 충후(忠厚)한 지극한 뜻이다. 그런데 이제 후손된 자들이 스스로 끊어내어 파(派)를 별도로 세우는 것은 진실로 차마 못 할 일이었다. 논의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올해 경인년(1890년)에야 비로소 보책이 완성되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뒤늦게 소식을 전해올까 기다렸으나, 아아! 이미 때가 늦었도다. 해서 집안에서 별도로 족보를 닦는 날에 그 정(情)이 우리와 다름이 없을 것이니, 이후에 다시 합치는 것은 오늘의 일과 비교하면 오히려 힘을 들이기가 쉬울 것이다.
다만 지금 이른바 [차마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 이 마음은 곧 우리 조상님들께서 자손을 균등하게 보시던 마음이다. 가까운 이를 두텁게 하는 것도 이 마음이요, 가까운 이를 두텁게 하여 먼 데까지 미치는 것 또한 이 마음이다. 오직 이 마음만 바뀌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백 세대 한 집안]이라는 정신은 여기에 있는 것이니, 족보를 같이 하느냐 아니냐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족보를 이어 닦자는 논의는 처음에 족형 봉진(鳳鎭) 씨가 시작하였으니, 그는 지난번 족보를 닦았던 입재공(기재선奇在善)의 아들이다. 규례를 구보(舊譜)에 맞추어 계획하고 경영함에 방도가 있었다. 그러나 족보가 완성되었을 때는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으니 또한 슬픈 일이로다! 이후 족보를 완성함에는 문중의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힘을 보탰다. 그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자는 족손 우만(宇萬, 기우만)이다.
후손 창록(昌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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