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7차 행주기씨족보서幸州奇氏族譜序 정유년丁酉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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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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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譜는 血緣의 明鑑이요 道義의 源泉이로서 우리 精神文化의 象徵인 것이다 年久世遠하고 世波流離에서 自身의 出生과 祖先의 遺烈을 考信할 곳이 없고 血緣間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게 된다면 그의 悲哀와 孤寓는 어떠하랴? 이에 族譜는 祖先의 歷系와 血緣의 父母兄弟妻子며 行列年齡嫁娶生卒이 一目瞭然하계 알게되여 孝友의 마음이 油然히 나게 됨으로 이는 우리의 悠久한 文化生活에 道義의 精魂이 되었든 것이다.
近來東西文化交流期에 際하여 所謂世界人類主義를 標榜하여 族譜의 退後를 妄想하고 僻解하는 淺膚層이 或有한 듯한데 이것은 原始生活의 還元이 아니면 過去神社參拜와 創氏强要로 換父易祖하든 隷屬時代의 再版을 聯想치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現今의 浮華輕跳한 精神과 放縱頹廢된 思想에 사로잡힘이 없이 族譜의 眞實한 價値와 尊嚴한 性格을 깊이 認識하여 自家를 먼저 알므로서 家門의 繁榮이 생하고 傳來의 文化를 守護함으로서 民族의 發展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奇姓은 箕聖의 後裔로서 道德文章과 勳業美行이 綿綿繼承하여 社會의 敎化가 많으시니 眩菴先祖[虔]은 社會의 敎化와 高邁하신 節義가 千古에 빛나 있으며 皆伯君[孝謹]은 壬辰倭亂에 德豐君[協]은 丁卯胡亂에 省齋義將[參衍]은 日帝의 侵略에다 祖國의 守護로 殉節하시였으며 服齋[遵]과 高峰[大升]과 錦江[孝諫]과 松嚴[挺翼]과 蘆沙[正鎭]과 松沙[宇萬] 여러 先生은다 道德文章으로 士林의 領袖시였고 榮安王[子敖]의 勳爵과 晩全相公[自獻]의 節義等은 다 一一히 枚擧키 難한데 우리同宗은 奇姓의 后裔된 榮譽로움을 깊이 認識하고 向上을 圖하여야 할 것이다.
近來 悲慘한 戰亂의 重疊과 長久한 流離波蕩으로 因하여 祖先의 聲華가 泯沒하여가고 急激한 外來의 風潮에 崇高한 文化가 埋滅하여가는 今日의 修譜는 情勢도 緊要하려니와 時間도 遲滯할 수 없었든 것이다 多幸히 昨秋全國代表大會에서 諸宗의 贊成을 얻어 陣容을 構成하고 進行함에 元來事業은 巨創하고 難關도 非一非再였으나 此를 一一히 克服하고 今日의 完成을 보게된 것은 오직 編修會任員諸賢의 努力의 結晶인 것이다.
今譜는 特히 尊祖重宗의 精神에서 傳來의 獨善主義를 修正하여 各處의 流離風散된 一家를 全部收拾하여 共同繁榮을 圖하게 되였는데 三八線으로 因하여 海西一家가 入譜치 못한 것이 遺憾이였으나 現越南한 一家만은 빠짐없이 入譜하게 되었으며 譜規는 傳來의 規範內에서 時宜에 順應하게 하였는데 誌狀錄等 文辭는 文章及財政의 貧困으로 因하여 簡易한 國漢文으로 譯刊하지 못하고 다만 句節에 表만을 부치게 되어서 老少諸宗이 다 같이 祖先의 勳業美行等 事蹟을 쉽사리 解得치 못하게된 것이 遺憾으로 여기는바나 如今荒凉世態에 다만 順調로히 된 것만을 惟一의 幸으로 여기며 今日의 未洽한 것은 後進의 賢明한 裁量에 미루고 尤先國漢文으로 修譜의 辭를 謹述하다
檀紀四二八九年孟冬
幸州奇氏大宗中總務理事
不肖後孫 成度 謹書
족보(族譜)는 혈연(血緣:같은 피의 계통)의 명감(明鑑:밝은 거울, 즉 본보기)이요, 도의(道義: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원천(源泉:사물의 근원)으로서 우리 정신문화(精神文化)의 상징(象徵)인 것이다.
세월이 오래 흐르고(年久世遠:연구세원) 세상 물결에 떠돌아다니다가(世波流離:세파유리) 자신의 출생과 조상의 유렬(遺烈:남기신 공적)을 고신(考信:상고하여 믿음)할 곳이 없고, 혈연 간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게 된다면 그 비애(悲哀:슬픔)와 고우(孤寓:외롭게 머 않음)는 어떠하랴?
이에 족보는 조상의 역계(歷系:대대로 이어온 계통)와 혈연의 부모, 형제, 처자이며 항렬(行列:같은 혈족의 세대 순서), 연령, 가취(嫁娶:시집가고 장가듦), 생졸(生卒:태어남과 죽음)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한 번 보고도 환히 알 수 있음)하게 알게 되어 효우(孝友: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함)의 마음이 유연(油然: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함)히 나게 됨으로, 이는 우리의 유구한 문화생활에 도의의 정혼(精魂:정신과 혼)이 되었던 것이다.
근래 동서 문화 교류기에 즈음하여 이른바 세계인류주의(世界人類主義)를 표방(標榜:내세움)하며 족보의 퇴후(退後:뒤로 물러남, 낙후됨)를 망상(妄想:그릇된 생각)하고 벽해(僻解:편벽되게 해석함)하는 천부층(淺膚層:생각이 얕은 사람들)이 혹 있는 듯한데, 이것은 원시생활(原始生活)의 환원(還元:되돌아감)이 아니면 과거 신사참배와 창씨강요(創氏强要)로 환부역조(換父易祖:아비를 바꾸고 할아버지를 바꿈, 즉 근본을 부정함)하던 예속시대(隷屬時代:종살이하던 시대)의 재판(再版:거듭됨)을 연상(聯想)치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현금의 부화경조(浮華輕跳:겉만 화려하고 경솔함)한 정신과 방종퇴폐(放縱頹廢)된 사상에 사로잡힘이 없이 족보의 진실한 가치와 존엄(尊嚴)한 성격을 깊이 인식(認識)하여 자가를 먼저 앎으로써 가문의 번영(繁榮)이 생하고, 전래(傳來)의 문화를 수호(守護)함으로써 민족의 발전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 기성(奇姓)은 기성(箕聖:기자)의 후예(後裔:자손)로서 도덕문장(道德文章)과 훈업미행(勳業美行:공적과 아름다운 행실)이 면면계승(綿綿繼承:끊임없이 이어짐)하여 사회의 교화(敎化)가 많으시니, 현암(眩菴) 선조 [건(虔)]은 사회의 교화와 고매(高邁:품격이 높고 빼어남)하신 절의(節義:절개와 의리)가 천고(千古:먼 옛날부터 지금까지)에 빛나 있으며, 개백군(皆伯君) [효근(孝謹)]은 임진왜란에, 덕풍군(德豐君) [협(協)]은 정묘호란에, 성재(省齋) 의장 [참연(參衍)]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조국의 수호로 순절(殉節:충의를 위해 목숨을 바침)하셨으며, 복재(服齋) [준(遵)], 고봉(高峰) [대승(大升)], 금강(錦江) [효간(孝諫)], 송엄(松嚴) [정익(挺翼)], 노사(蘆沙) [정진(正鎭)], 송사(松沙) [우만(宇萬)] 여러 선생은 다 도덕문장으로 사림(士林:선비 사회)의 영수(領袖:우두머리)셨고, 영안왕(榮安王) [자오(子敖)]의 훈작(勳爵:공훈과 작위)과 만전상공(晩全相公) [자헌(自獻)]의 절의 등은 다 일일이 매거(枚擧:하나하나 들어 말함)키 난한데(어려운데), 우리 동종(同宗:같은 종친)은 기성(奇姓)의 후예 된 영예(榮譽)로움을 깊이 인식하고 향상(向上)을 도(圖:도모함)하여야 할 것이다.
근래 비참한 전란의 중첩(重疊:거듭 겹침)과 장구한 유리파탕(流離波蕩:떠돌아다니며 정처 없음)으로 인하여 조상의 성화(聲華:명성)가 민멸(泯沒:흔적 없이 사라짐)하여가고, 급격한 외래의 풍조에 숭고한 문화가 매몰(埋滅)하여가는 오늘의 수보(修譜:족보를 수정하여 만듦)는 정세(情勢)도 긴요(緊要)하려니와 시간도 지체(遲滯)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작년 가을 전국대표대회에서 제종(諸宗:여러 종친)의 찬성을 얻어 진용을 구성하고 진행함에, 원래 사업은 거창(巨創)하고 난관(難關)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한두 번이 아님)였으나 이를 일일이 극복하고 오늘의 완성을 보게 된 것은 오직 편수회(編修會) 임원 제현(諸賢:여러 어진 분들)의 노력의 결정(結晶)인 것이다.
금번 족보는 특히 존조중종(尊祖重宗:조상을 존경하고 종친을 중히 여김)의 정신에서 전래의 독선주의(獨善主義)를 수정하여 각처에 유리풍산(流離風散:뿔뿔이 흩어짐)된 일가를 전부 수습(收拾)하여 공동 번영을 도모하게 되었는데, 삼팔선으로 인하여 해서(海西:황해도 지방) 일가가 입보(入譜:족보에 이름을 올림)치 못한 것이 유감(遺憾)이었으나 현재 월남(越南)한 일가만은 빠짐없이 입보하게 되었으며, 보규(譜規:족보의 규정)는 전래의 규범(規範) 내에서 시의(時宜:그 당시의 사정)에 순응(順應)하게 하였다.
지장록(誌狀錄:행적을 기록한 글) 등 문사(文辭:글의 내용)는 문장 및 재정의 빈곤으로 인하여 간이한 국한문(國漢文)으로 역간(譯刊:번역하여 출판함)하지 못하고 다만 구절에 표(表:토)만을 붙이게 되어서 노소제종(老少諸宗:늙고 젊은 여러 종친)이 다 같이 조상의 훈업미행 등 사적(事蹟)을 쉽사리 해득(解得:이해하여 깨달음)치 못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나, 요즈음같이 황량(荒凉)한 세태(世態)에 다만 순조로이 된 것만을 유일한 다행으로 여기며, 오늘의 미흡(未洽:부족함)한 것은 후진의 현명한 재량(裁量)에 미루고 우선 국한문으로 수보의 글을 삼가 짓는다.
단기 4289년(서기 1956년) 맹동(孟冬:초겨울)
행주 기씨 대종중 총무이사
불초후손(不肖後孫:조상을 닮지 못한 못난 후손, 자기 겸칭) 성도(成度) 삼가 씀
1957년-7차-幸州奇氏族譜序-丁酉年
近來東西文化交流期에 際하여 所謂世界人類主義를 標榜하여 族譜의 退後를 妄想하고 僻解하는 淺膚層이 或有한 듯한데 이것은 原始生活의 還元이 아니면 過去神社參拜와 創氏强要로 換父易祖하든 隷屬時代의 再版을 聯想치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現今의 浮華輕跳한 精神과 放縱頹廢된 思想에 사로잡힘이 없이 族譜의 眞實한 價値와 尊嚴한 性格을 깊이 認識하여 自家를 먼저 알므로서 家門의 繁榮이 생하고 傳來의 文化를 守護함으로서 民族의 發展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奇姓은 箕聖의 後裔로서 道德文章과 勳業美行이 綿綿繼承하여 社會의 敎化가 많으시니 眩菴先祖[虔]은 社會의 敎化와 高邁하신 節義가 千古에 빛나 있으며 皆伯君[孝謹]은 壬辰倭亂에 德豐君[協]은 丁卯胡亂에 省齋義將[參衍]은 日帝의 侵略에다 祖國의 守護로 殉節하시였으며 服齋[遵]과 高峰[大升]과 錦江[孝諫]과 松嚴[挺翼]과 蘆沙[正鎭]과 松沙[宇萬] 여러 先生은다 道德文章으로 士林의 領袖시였고 榮安王[子敖]의 勳爵과 晩全相公[自獻]의 節義等은 다 一一히 枚擧키 難한데 우리同宗은 奇姓의 后裔된 榮譽로움을 깊이 認識하고 向上을 圖하여야 할 것이다.
近來 悲慘한 戰亂의 重疊과 長久한 流離波蕩으로 因하여 祖先의 聲華가 泯沒하여가고 急激한 外來의 風潮에 崇高한 文化가 埋滅하여가는 今日의 修譜는 情勢도 緊要하려니와 時間도 遲滯할 수 없었든 것이다 多幸히 昨秋全國代表大會에서 諸宗의 贊成을 얻어 陣容을 構成하고 進行함에 元來事業은 巨創하고 難關도 非一非再였으나 此를 一一히 克服하고 今日의 完成을 보게된 것은 오직 編修會任員諸賢의 努力의 結晶인 것이다.
今譜는 特히 尊祖重宗의 精神에서 傳來의 獨善主義를 修正하여 各處의 流離風散된 一家를 全部收拾하여 共同繁榮을 圖하게 되였는데 三八線으로 因하여 海西一家가 入譜치 못한 것이 遺憾이였으나 現越南한 一家만은 빠짐없이 入譜하게 되었으며 譜規는 傳來의 規範內에서 時宜에 順應하게 하였는데 誌狀錄等 文辭는 文章及財政의 貧困으로 因하여 簡易한 國漢文으로 譯刊하지 못하고 다만 句節에 表만을 부치게 되어서 老少諸宗이 다 같이 祖先의 勳業美行等 事蹟을 쉽사리 解得치 못하게된 것이 遺憾으로 여기는바나 如今荒凉世態에 다만 順調로히 된 것만을 惟一의 幸으로 여기며 今日의 未洽한 것은 後進의 賢明한 裁量에 미루고 尤先國漢文으로 修譜의 辭를 謹述하다
檀紀四二八九年孟冬
幸州奇氏大宗中總務理事
不肖後孫 成度 謹書
족보(族譜)는 혈연(血緣:같은 피의 계통)의 명감(明鑑:밝은 거울, 즉 본보기)이요, 도의(道義: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원천(源泉:사물의 근원)으로서 우리 정신문화(精神文化)의 상징(象徵)인 것이다.
세월이 오래 흐르고(年久世遠:연구세원) 세상 물결에 떠돌아다니다가(世波流離:세파유리) 자신의 출생과 조상의 유렬(遺烈:남기신 공적)을 고신(考信:상고하여 믿음)할 곳이 없고, 혈연 간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게 된다면 그 비애(悲哀:슬픔)와 고우(孤寓:외롭게 머 않음)는 어떠하랴?
이에 족보는 조상의 역계(歷系:대대로 이어온 계통)와 혈연의 부모, 형제, 처자이며 항렬(行列:같은 혈족의 세대 순서), 연령, 가취(嫁娶:시집가고 장가듦), 생졸(生卒:태어남과 죽음)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한 번 보고도 환히 알 수 있음)하게 알게 되어 효우(孝友: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함)의 마음이 유연(油然: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함)히 나게 됨으로, 이는 우리의 유구한 문화생활에 도의의 정혼(精魂:정신과 혼)이 되었던 것이다.
근래 동서 문화 교류기에 즈음하여 이른바 세계인류주의(世界人類主義)를 표방(標榜:내세움)하며 족보의 퇴후(退後:뒤로 물러남, 낙후됨)를 망상(妄想:그릇된 생각)하고 벽해(僻解:편벽되게 해석함)하는 천부층(淺膚層:생각이 얕은 사람들)이 혹 있는 듯한데, 이것은 원시생활(原始生活)의 환원(還元:되돌아감)이 아니면 과거 신사참배와 창씨강요(創氏强要)로 환부역조(換父易祖:아비를 바꾸고 할아버지를 바꿈, 즉 근본을 부정함)하던 예속시대(隷屬時代:종살이하던 시대)의 재판(再版:거듭됨)을 연상(聯想)치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현금의 부화경조(浮華輕跳:겉만 화려하고 경솔함)한 정신과 방종퇴폐(放縱頹廢)된 사상에 사로잡힘이 없이 족보의 진실한 가치와 존엄(尊嚴)한 성격을 깊이 인식(認識)하여 자가를 먼저 앎으로써 가문의 번영(繁榮)이 생하고, 전래(傳來)의 문화를 수호(守護)함으로써 민족의 발전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 기성(奇姓)은 기성(箕聖:기자)의 후예(後裔:자손)로서 도덕문장(道德文章)과 훈업미행(勳業美行:공적과 아름다운 행실)이 면면계승(綿綿繼承:끊임없이 이어짐)하여 사회의 교화(敎化)가 많으시니, 현암(眩菴) 선조 [건(虔)]은 사회의 교화와 고매(高邁:품격이 높고 빼어남)하신 절의(節義:절개와 의리)가 천고(千古:먼 옛날부터 지금까지)에 빛나 있으며, 개백군(皆伯君) [효근(孝謹)]은 임진왜란에, 덕풍군(德豐君) [협(協)]은 정묘호란에, 성재(省齋) 의장 [참연(參衍)]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조국의 수호로 순절(殉節:충의를 위해 목숨을 바침)하셨으며, 복재(服齋) [준(遵)], 고봉(高峰) [대승(大升)], 금강(錦江) [효간(孝諫)], 송엄(松嚴) [정익(挺翼)], 노사(蘆沙) [정진(正鎭)], 송사(松沙) [우만(宇萬)] 여러 선생은 다 도덕문장으로 사림(士林:선비 사회)의 영수(領袖:우두머리)셨고, 영안왕(榮安王) [자오(子敖)]의 훈작(勳爵:공훈과 작위)과 만전상공(晩全相公) [자헌(自獻)]의 절의 등은 다 일일이 매거(枚擧:하나하나 들어 말함)키 난한데(어려운데), 우리 동종(同宗:같은 종친)은 기성(奇姓)의 후예 된 영예(榮譽)로움을 깊이 인식하고 향상(向上)을 도(圖:도모함)하여야 할 것이다.
근래 비참한 전란의 중첩(重疊:거듭 겹침)과 장구한 유리파탕(流離波蕩:떠돌아다니며 정처 없음)으로 인하여 조상의 성화(聲華:명성)가 민멸(泯沒:흔적 없이 사라짐)하여가고, 급격한 외래의 풍조에 숭고한 문화가 매몰(埋滅)하여가는 오늘의 수보(修譜:족보를 수정하여 만듦)는 정세(情勢)도 긴요(緊要)하려니와 시간도 지체(遲滯)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작년 가을 전국대표대회에서 제종(諸宗:여러 종친)의 찬성을 얻어 진용을 구성하고 진행함에, 원래 사업은 거창(巨創)하고 난관(難關)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한두 번이 아님)였으나 이를 일일이 극복하고 오늘의 완성을 보게 된 것은 오직 편수회(編修會) 임원 제현(諸賢:여러 어진 분들)의 노력의 결정(結晶)인 것이다.
금번 족보는 특히 존조중종(尊祖重宗:조상을 존경하고 종친을 중히 여김)의 정신에서 전래의 독선주의(獨善主義)를 수정하여 각처에 유리풍산(流離風散:뿔뿔이 흩어짐)된 일가를 전부 수습(收拾)하여 공동 번영을 도모하게 되었는데, 삼팔선으로 인하여 해서(海西:황해도 지방) 일가가 입보(入譜:족보에 이름을 올림)치 못한 것이 유감(遺憾)이었으나 현재 월남(越南)한 일가만은 빠짐없이 입보하게 되었으며, 보규(譜規:족보의 규정)는 전래의 규범(規範) 내에서 시의(時宜:그 당시의 사정)에 순응(順應)하게 하였다.
지장록(誌狀錄:행적을 기록한 글) 등 문사(文辭:글의 내용)는 문장 및 재정의 빈곤으로 인하여 간이한 국한문(國漢文)으로 역간(譯刊:번역하여 출판함)하지 못하고 다만 구절에 표(表:토)만을 붙이게 되어서 노소제종(老少諸宗:늙고 젊은 여러 종친)이 다 같이 조상의 훈업미행 등 사적(事蹟)을 쉽사리 해득(解得:이해하여 깨달음)치 못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나, 요즈음같이 황량(荒凉)한 세태(世態)에 다만 순조로이 된 것만을 유일한 다행으로 여기며, 오늘의 미흡(未洽:부족함)한 것은 후진의 현명한 재량(裁量)에 미루고 우선 국한문으로 수보의 글을 삼가 짓는다.
단기 4289년(서기 1956년) 맹동(孟冬:초겨울)
행주 기씨 대종중 총무이사
불초후손(不肖後孫:조상을 닮지 못한 못난 후손, 자기 겸칭) 성도(成度)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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