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7차 정유족보발丁酉族譜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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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7차-丁酉族譜跋
氏之有譜, 如國之有史. 彰其先祖而仰其德, 明其昭穆而正其序, 詳其分派而敦其愛, 以之而圖雲仍之繁榮焉, 此實修譜之本旨.
而比諸木, 則先祖若根幹, 子孫如枝葉. 而枝之分爲派, 氣之連爲宗. 千枝萬葉, 莫非同一根幹之生. 而根深之木, 風亦不抗, 有蕡其實, 有灼其華者, 非此耶? 今此大同譜, 實基於培根達枝之原理, 而所以爲修也.
自甲午譜後, 經一世餘, 而況又去庚寅, 惟我國家, 奄經未曾有之大變. 疆土三千里, 焦土化, 民族五百萬, 冤鬼化. 人事之夢幻, 桑海之變改, 昔非不知, 而離未幾月, 遠近同宗, 爲鬼者幾人, 傳來家屋, 燒失幾許耶? 先靈冥冥在天, 四海一家, 百世至親, 而國土分疆, 南北呼吸不通, 聲息不相聞, 是豈理也哉?
族姪成度, 慨然于此. 去乙未, 鳩財各派, 修理高陽先墓, 繼而新築齋室. 同年十月享祀之際, 發論修譜之汲汲, 而諸宗齊聲合議. 於是復會長城, 議定其編輯要綱與經劃部署. 族姪衡度與其弟成度, 統制經之. 若其凡例, 則大略準舊譜. 大變更處, 則集衆論而考定, 至於多小取捨, 隨時適宜處之. 如是而是年冬, 譜事始焉.
事甚浩大, 飽經艱難, 而徹夜勤務, 付諸剞劂. 越三年丁酉春, 始克成編, 總十四卷. 經亂修譜, 慕仰先蔭, 百倍於平昔之譜. 開卷送情, 相憐相慰, 千里有咫尺之感, 其成可謂速矣. 而恨不得與北韓諸宗通同, 究其顚末. 諸宗老少咸有力焉, 而始終替勞, 則族孫老柏最焉.
丁酉 春 二月 吉日 後孫 宇增 謹跋.
성씨에 족보가 있음은 나라에 역사가 있음과 같습니다. 선조를 드러내어 그 덕을 우러르고, 소목(昭穆: 조상의 차례)을 밝혀 그 순서를 바로잡으며, 갈라진 파를 상세히 하여 그 사랑을 두텁게 함으로써 후손(雲仍)의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족보를 만드는 본래의 취지입니다.
이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선조는 뿌리와 줄기 같고 자손은 가지와 잎과 같습니다. 가지가 나뉘어 파(派)가 되고 기운이 이어져 종친(宗)이 됩니다. 천 가지 만 잎사귀가 하나의 뿌리와 줄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그 열매가 풍성하며 그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법인데, 족보가 바로 이를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대동보는 실로 뿌리를 북돋우고 가지에까지 영양을 전달하는(培根達枝) 원리에 기반하여 편찬된 것입니다.
갑오보(1894년) 이후 한 세대(30여 년)가 넘게 지났고, 더군다나 지난 경인년(1950년, 6.25 전쟁)에 우리 국가는 문득 미증유의 큰 변고를 겪었습니다. 삼천리 강토는 초토화되었고 5백만 민족은 원통한 귀신이 되었습니다. 인간사가 꿈과 같고 상전벽해의 변화가 심함은 예전부터 몰랐던 바 아니나, 난리가 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멀고 가까운 종친들 중 죽은 자가 몇 명이며 전해 내려오던 집들이 불타 없어진 것이 또 얼마입니까? 조상의 신령은 아득히 하늘에 계시고 온 세상 일가가 백 대를 이어갈 지극한 친족인데, 국토가 나뉘어 남북의 호흡이 통하지 않고 소식조차 서로 들리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이치라 하겠습니까?
족질(조카 항렬) 성도(成度)가 이를 개탄스럽게 여겨, 지난 을미년(1955년)에 각 파에서 재물을 모아 고양의 선조 묘소를 수리하고 이어 재실을 신축하였습니다. 같은 해 10월 제사를 지낼 때 족보 편찬의 급박함을 제안하니 모든 종친이 한목소리로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전남 장성에서 다시 모여 편집 요강과 계획 및 부서를 정하였습니다. 족질 형도(衡度)와 그 아우 성도가 이를 통제하고 경영하였습니다. 범례(원칙)는 대략 구보(옛 족보)를 따랐고, 크게 변경할 곳은 여러 사람의 논의를 모아 고정하였으며, 다소 취사선택할 부분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해 겨울에 족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이 매우 방대하여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밤샘 근무를 마다치 않고 인쇄(剞劂: 기궐)에 넘겼습니다. 3년이 지난 정유년(1957년) 봄에 비로소 총 14권의 편찬을 마쳤습니다. 난리를 겪은 뒤에 족보를 만드니 조상의 음덕을 우러러보는 마음이 평소에 만드는 족보보다 백 배는 더합니다. 책을 펴 정을 나누니 서로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게 되어, 천 리 밖이 지척처럼 느껴지니 그 완성이 가히 빠르다 할 만합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북한의 여러 종친과 소통하여 그 전말을 궁구하지 못한 점입니다. 종친의 노소 모두가 힘을 보탰으나 시종일관 수고를 대신한 것은 족손(손자 항렬) 노백(老柏)이 으뜸이었습니다.
정유년(1957년) 봄 2월 길일에 후손 우증(宇增) 삼가 발문을 쓰다.
氏之有譜, 如國之有史. 彰其先祖而仰其德, 明其昭穆而正其序, 詳其分派而敦其愛, 以之而圖雲仍之繁榮焉, 此實修譜之本旨.
而比諸木, 則先祖若根幹, 子孫如枝葉. 而枝之分爲派, 氣之連爲宗. 千枝萬葉, 莫非同一根幹之生. 而根深之木, 風亦不抗, 有蕡其實, 有灼其華者, 非此耶? 今此大同譜, 實基於培根達枝之原理, 而所以爲修也.
自甲午譜後, 經一世餘, 而況又去庚寅, 惟我國家, 奄經未曾有之大變. 疆土三千里, 焦土化, 民族五百萬, 冤鬼化. 人事之夢幻, 桑海之變改, 昔非不知, 而離未幾月, 遠近同宗, 爲鬼者幾人, 傳來家屋, 燒失幾許耶? 先靈冥冥在天, 四海一家, 百世至親, 而國土分疆, 南北呼吸不通, 聲息不相聞, 是豈理也哉?
族姪成度, 慨然于此. 去乙未, 鳩財各派, 修理高陽先墓, 繼而新築齋室. 同年十月享祀之際, 發論修譜之汲汲, 而諸宗齊聲合議. 於是復會長城, 議定其編輯要綱與經劃部署. 族姪衡度與其弟成度, 統制經之. 若其凡例, 則大略準舊譜. 大變更處, 則集衆論而考定, 至於多小取捨, 隨時適宜處之. 如是而是年冬, 譜事始焉.
事甚浩大, 飽經艱難, 而徹夜勤務, 付諸剞劂. 越三年丁酉春, 始克成編, 總十四卷. 經亂修譜, 慕仰先蔭, 百倍於平昔之譜. 開卷送情, 相憐相慰, 千里有咫尺之感, 其成可謂速矣. 而恨不得與北韓諸宗通同, 究其顚末. 諸宗老少咸有力焉, 而始終替勞, 則族孫老柏最焉.
丁酉 春 二月 吉日 後孫 宇增 謹跋.
성씨에 족보가 있음은 나라에 역사가 있음과 같습니다. 선조를 드러내어 그 덕을 우러르고, 소목(昭穆: 조상의 차례)을 밝혀 그 순서를 바로잡으며, 갈라진 파를 상세히 하여 그 사랑을 두텁게 함으로써 후손(雲仍)의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족보를 만드는 본래의 취지입니다.
이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선조는 뿌리와 줄기 같고 자손은 가지와 잎과 같습니다. 가지가 나뉘어 파(派)가 되고 기운이 이어져 종친(宗)이 됩니다. 천 가지 만 잎사귀가 하나의 뿌리와 줄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그 열매가 풍성하며 그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법인데, 족보가 바로 이를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대동보는 실로 뿌리를 북돋우고 가지에까지 영양을 전달하는(培根達枝) 원리에 기반하여 편찬된 것입니다.
갑오보(1894년) 이후 한 세대(30여 년)가 넘게 지났고, 더군다나 지난 경인년(1950년, 6.25 전쟁)에 우리 국가는 문득 미증유의 큰 변고를 겪었습니다. 삼천리 강토는 초토화되었고 5백만 민족은 원통한 귀신이 되었습니다. 인간사가 꿈과 같고 상전벽해의 변화가 심함은 예전부터 몰랐던 바 아니나, 난리가 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멀고 가까운 종친들 중 죽은 자가 몇 명이며 전해 내려오던 집들이 불타 없어진 것이 또 얼마입니까? 조상의 신령은 아득히 하늘에 계시고 온 세상 일가가 백 대를 이어갈 지극한 친족인데, 국토가 나뉘어 남북의 호흡이 통하지 않고 소식조차 서로 들리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이치라 하겠습니까?
족질(조카 항렬) 성도(成度)가 이를 개탄스럽게 여겨, 지난 을미년(1955년)에 각 파에서 재물을 모아 고양의 선조 묘소를 수리하고 이어 재실을 신축하였습니다. 같은 해 10월 제사를 지낼 때 족보 편찬의 급박함을 제안하니 모든 종친이 한목소리로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전남 장성에서 다시 모여 편집 요강과 계획 및 부서를 정하였습니다. 족질 형도(衡度)와 그 아우 성도가 이를 통제하고 경영하였습니다. 범례(원칙)는 대략 구보(옛 족보)를 따랐고, 크게 변경할 곳은 여러 사람의 논의를 모아 고정하였으며, 다소 취사선택할 부분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해 겨울에 족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이 매우 방대하여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밤샘 근무를 마다치 않고 인쇄(剞劂: 기궐)에 넘겼습니다. 3년이 지난 정유년(1957년) 봄에 비로소 총 14권의 편찬을 마쳤습니다. 난리를 겪은 뒤에 족보를 만드니 조상의 음덕을 우러러보는 마음이 평소에 만드는 족보보다 백 배는 더합니다. 책을 펴 정을 나누니 서로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게 되어, 천 리 밖이 지척처럼 느껴지니 그 완성이 가히 빠르다 할 만합니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북한의 여러 종친과 소통하여 그 전말을 궁구하지 못한 점입니다. 종친의 노소 모두가 힘을 보탰으나 시종일관 수고를 대신한 것은 족손(손자 항렬) 노백(老柏)이 으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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