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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7차보 정유족보발丁酉族譜跋 다른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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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7차보-다른-발문-1

箕聖之仁政厚澤, 及於萬世. 金枝玉葉之雲仍, 蕃昌其麗不億. 盖自諱友誠侍中公, 積累基本以降, 我奇氏允爲海東大姓, 甲於三韓. 達官顯位, 往往彙征, 宗儒之道學, 代不乏人.
吁! 我朝鮮, 箕疇以來, 文獻不足, 譜或疎略, 況經兵燹之後乎? 總務成度氏, 素懷慕先修譜之誠, 勸不佞助於斯務. 協心同力, 奮發淬礪, 遍告諸族. 其響應, 捷於桴鼓. 爭先合單, 猶恐一簀功虧. 師古董役, 倣朱夫子實記之法, 更搜舊家文獻, 益闡其所不詳. 尊祖睦族之道明矣.
諸族仰遵聖模, 敬畏服膺八敎, 則其於厚倫, 烏可小補云哉?

丁酉 孟春 後孫 文衍 謹跋.


기성(箕聖: 기자)의 어진 정치와 두터운 은택은 만세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그 금지옥엽 같은 후손들이 번창하여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대개 시중공(侍中公) 휘(諱) 우성(友誠) 선조께서 기틀을 쌓으신 이래로, 우리 기씨(奇氏)는 진실로 우리나라(海東)의 큰 성씨가 되어 삼한에서 으뜸이 되었습니다. 높은 관직과 현달한 지위가 줄을 이었고, 종문(宗門) 유학자들의 도학 또한 대대로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 우리나라는 기자께서 전하신 홍범구주(箕疇) 이래로 문헌이 부족하여 족보가 혹 소략한 면이 있었는데, 하물며 난리(6.25 전쟁)를 겪은 뒤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총무 성도(成度) 씨가 평소 조상을 사모하고 족보를 닦으려는 정성이 지극하여, 부족한 저에게 이 업무를 도와달라 권하였습니다. 이에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아 분발하고 갈고 닦으며 모든 종친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그 호응함이 북채로 북을 치는 듯(즉각적이고 매우 빠름) 하였습니다. 앞다투어 단자(가족 기록)를 합치며 혹시라도 마지막 정성이 부족하여 공이 무너질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옛것을 본받아 일을 감독함에 주부자(朱夫子: 주희)의 실기법을 따랐고, 다시 옛집의 문헌들을 찾아내어 상세하지 못했던 부분을 더욱 밝혀내니, 조상을 존중하고 종족 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도리가 밝아졌습니다.

여러 종친이 성인(기자)의 모범을 우러러 따르고, 팔교(八敎: 범금팔조)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슴 깊이 새긴다면, 인륜을 두텁게 하는 데 어찌 작으나마 보탬이 된다고만 하겠습니까? (매우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정유년(1957년) 초봄 후손 문연(文衍) 삼가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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