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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7차보 정유보발丁酉族譜跋 다른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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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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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7차보-다른-발문

吾奇氏, 肇自馬韓末, 至今歷二千有餘年之間, 子姓遍於國中. 道德文章, 簪纓翰墨, 磊落相望, 蔚然爲東方著姓. 今滄桑累變, 雲仍漸替. 百世古家, 遺風無處影響, 則豈不寒心乎哉?
歲乙未立冬后三日, 各派諸族, 相與拜奠于貞武公·眩菴先生墓下. 旣奠, 齊會講睦于德陽齋. 大宗契總務理事成度氏, 首唱修譜之議, 衆皆諾諾而讚從. 於是輪告各門, 鳩財收單. 越明年丁酉三月告功, 此莫非先祖顧護之蔭, 亦莫非監務諸賢誠勤之力也.
而終始籌劃, 最有賢勞者, 會長衡度氏, 總務部長成度氏, 編輯部長老柏氏, 是已. 後之人體此心而敦宗, 則孝悌之心, 庶幾乎其不衰矣. 告成之日, 老柏氏委余置一言于卷末. 不揆僭妄, 謹盥手拜命, 而略叙顚末如右云爾.

丁酉 三月 吉日  後孫 宇興 謹書.


우리 기씨(奇氏)는 마한(馬韓) 말기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2,000여 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나라 안에 가득 찼습니다. 도덕과 문장, 벼슬(簪纓)과 문필(翰墨)이 뛰어난 분들이 줄을 이어 나타나, 울창하게 우리나라(東方)의 이름난 성씨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여러 번 바뀌어(滄桑累變) 후손들의 세력이 점점 쇠퇴하였습니다. 백 세대를 이어온 명문가의 남겨진 기풍이 영향력을 미칠 곳이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을미년(1955년) 입동 후 사흘째 되는 날에, 각 파의 여러 일가가 함께 정무공(貞武公)과 현암(眩菴) 선생의 묘소 아래에서 절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를 마친 뒤 덕양재(德陽齋)에 다 같이 모여 화목을 다졌습니다. 대종계 총무이사 성도(成度) 씨가 가장 먼저 족보를 닦는 논의(수보의)를 제안하니, 모두가 기쁘게 대답하며 찬성하고 따랐습니다. 이에 각 문중에 돌아가며 알리고 재물을 모으고 단자(가족 기록)를 거두었습니다. 이듬해를 지나 정유년(1957년) 3월에 마침내 일을 마쳤으니, 이는 선조께서 보살펴주신 음덕이 아님이 없으며, 또한 실무를 맡은 여러 어진 분의 정성과 부지런한 힘이 아님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계획(籌劃)함에 있어 가장 수고가 많았던 분은 회장 형도(衡度) 씨, 총무부장 성도(成도) 씨, 편집부장 노백(老柏) 씨, 바로 이분들입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이 마음을 본받아 종친 간에 우애를 두텁게 한다면, 효도와 우애의 마음이 거의 쇠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족보가 완성되던 날 노백 씨가 나에게 책의 끝에 한마디 남겨달라 부탁하였습니다. 내 분수에 넘치는 망령됨을 헤아리지 못하고 삼가 손을 씻고 명을 받들어, 대략의 전말을 위와 같이 서술할 따름입니다.

정유년(1957년) 3월 길일에 후손 우흥(宇興)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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