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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8차보 다른 서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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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8차보-다른-서문-2


譜之義何在? 欲尊祖而睦族也. 萬派之水其源一, 千枝之木其根一. 巨姓名族其麗雖不億, 厥初卽一人之身. 以一人之身分爲兄弟, 兄弟又分. 代遠族蕃, 星羅列邦, 則親者自疎, 厚者易薄. 至或哀慶而無問, 遇諸途而不相識, 尊祖睦族之義, 果何從以生?
先王是懼, 制宗法. 自漢以來, 有氏族志·花樹會, 使民興孝悌睦姻之風. 譜之來久矣, 譜之義大矣哉! 吾奇卽箕聖之裔. 箕聖東出, 敎民八條. 歷羅·朝鮮, 簪纓迄爀, 代出名人.
若貞武公諱虔, 錄淸白吏, 濟州有生祠, 爲端宗靖獻從享肅慕殿. 服齋遵, 諡文愍, 寔己卯名人. 文憲公大升, 以退陶高弟, 有理氣論辨, 是爲高峯先生. 漢城判尹大恒, 諡貞堅. 錦江孝諫, 師事河西, 河翁贈 “天地中間有二人” 詩. 皆伯君孝謹, 壬辰殉節, 錄宣武元勳, 命不祧典. 晩全自獻, 領議政, 諫廢母, 謫吉州.
且如監司苓, 棄隱義獻, 幸原君宗獻, 德豐君協, 散隱震甲, 松巖挺翼, 靖簡公彦鼎, 參議彦觀, 謙齋學敬, 文簡公蘆沙先生正鎭, 柏石軒陽行, 松臺文鉉, 耕叟亮衍, 省齋參衍, 松沙宇萬, 諸賢最爲著顯. 以外高文達識, 忠孝節烈, 譜不勝書.
此莫非祖先積蔭之所燾, 支流合海, 葉落歸根. 爲吾雲仍, 曷不思尊祖而睦族也? 吾譜之修, 始自肅宗戊辰, 再於英祖甲午, 終於丁酉. 今距丁酉爲二十六年前. 日之少者老, 老者死, 生者益蕃, 而住居不一. 先世文獻又多新出, 譜不可不續修.
況今世風日渝, 悖倫亂常之輩, 踵接肩比, 至有同族相奸之說. 此日此役, 斷不容少弛. 是役也, 京中之成度·世勳, 和順之世豐·推載爲長, 回出·常都任而世殷·相度·老悅副之. 南舒·常視而長城世豐總幹譜務. 靈命主編修, 老珏·宗錫·世億·昞鎬·心舒·浩元與焉. 且在內在外, 協贊效勞者, 凡至二百數十人. 合心一力, 少無圭角, 一門慶幸.
此外何大? 編新裝四冊, 刊行千七百部. 以余在任事之末, 僉議命卷端之文, 余不敢當, 亦不敢辭, 謹爲之言. 曰 “收族成編, 廣布遠近, 可謂能事畢乎?” 有大焉者, 學祖宗之心法, 述祖宗의 德業, 孝親忠國, 敦宗睦姻, 不愧爲名祖之孫, 然後修譜之義成矣. 如曰不然, 雖歲修家藏, 將何益之有? 此吾全宗之惕慮不己者也. 竊欲互勉而共勖焉.

    檀君紀元 四千三百十五年 壬戌 三월 일  後孫 宇大 謹序


족보의 의의가 어디에 있는가? 조상을 존경하고 종족 간에 화목하고자 함이다. 만 갈래의 물줄기도 그 근원은 하나이며, 천 가지의 나무도 그 뿌리는 하나이다. 큰 성씨와 이름난 가문의 수효가 비록 억만이나 되어도, 그 시초는 곧 한 사람의 몸이다. 한 사람의 몸에서 형제로 나뉘고, 형제가 또 나뉘어 대가 멀어지고 종족이 번성하여 나라 안에 별처럼 흩어져 살게 되면, 친했던 자는 저절로 소원해지고 두터웠던 정은 얇아지기 쉽다. 그리하여 혹 경조사가 있어도 묻지 않고 길에서 만나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게 되니, 조상을 존중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도리가 과연 어디서 나오겠는가?

옛 선왕들께서는 이를 두려워하여 종법(宗法)을 만드셨다. 한나라 이래로 씨족지와 화수회(花樹會)가 있어 백성들로 하여금 효도와 우애, 화목의 풍속을 일으키게 하였으니, 족보의 유래는 오래되었고 그 의의는 참으로 크다 하겠다!

우리 기씨(奇氏)는 곧 기성(箕聖: 기자)의 후예이다. 기자께서 동쪽으로 오시어 팔조교민(八條敎民)으로 백성을 가르치셨다. 신라와 조선을 거치며 벼슬과 명성이 드높아 대대로 명인을 배출하였다.

청백리에 녹선되고 제주에 생사당이 있으며 단종을 위해 충절을 지켜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된 정무공(貞武公) 휘 건(虔), 기묘사화의 명현이자 문민(文愍)의 시호를 받은 복재(服齋) 준(遵), 퇴계 이황의 고제(高弟)로서 이기론을 변론하신 고봉(高峰) 문헌공(文憲公) 대승(大升), 한성판윤을 지낸 정견(貞堅) 대항(大恒), 하서 김인후 선생을 사사하여 천지 사이에 두 사람이 있다는 시를 받은 금강(錦江) 효간(孝諫),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선무원훈에 오르고 불천지위의 명을 받은 계백군(皆伯君) 효근(孝謹), 영의정으로서 인목대비 폐모론을 간하다 길주로 귀양 간 만전(晩全) 자헌(自獻) 등이 계시다.

또한 감사 영(苓), 기은 의헌(義獻), 행원군 종헌(宗獻), 덕풍군 협(協), 산은 진갑(震甲), 송암 정익(挺翼), 정간공 언정(彦鼎), 참의 언관(彦觀), 겸재 학경(學敬), 문간공 노사 선생 정진(正鎭), 백석헌 양행(陽行), 송대 문현(文鉉), 경수 양연(亮衍), 성재 참연(參衍), 송사 우만(宇萬) 등 여러 현인이 가장 저명하시다. 그 외에도 높은 학식과 지혜, 충성·효도·절개를 지킨 분들이 족보에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는 모두 조상께서 쌓으신 음덕의 보살핌이 아님이 없으니, 지류가 바다에서 합치고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듯, 우리 후손된 자들이 어찌 조상을 존경하고 화목하기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우리 족보의 수보는 숙종 무진보(1688년)로부터 시작하여 영조 갑오보(1774년)를 거쳐 정유보(1957년)에서 마쳤다. 지금 정유보로부터 26년이 지났다. 예전의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었으며, 새로 태어난 자는 더욱 많아졌으나 거주지가 일정치 않다. 선대의 문헌 또한 새로 나온 것이 많으니 족보를 계속해서 닦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지금 세상 풍조가 날로 변하여 인륜을 저버리고 상도를 어지럽히는 무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심지어 같은 종족끼리 간음한다는 설까지 있으니, 오늘의 이 작업은 단연코 조금도 늦출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역사에 서울의 성도·세훈, 화순의 세풍·추재가 어른이 되고, 회출·상도가 소임을 맡았으며 세은·상도·노열이 이를 보좌하였다. 남서·상시가 돕고 장성의 세풍이 보무(譜務)를 총괄하였다. 영명이 편집을 주관하고 노각·종석·세억·병호·심서·호원이 참여하였다. 또한 내외에서 협력하고 수고한 자가 무려 230여 명에 달한다.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조금도 갈등(圭角)이 없었으니 집안의 경사로다.

이 외에 무엇이 더 크겠는가? 새롭게 4권으로 엮어 1,700부를 간행하였다. 내가 소임을 맡고 있기에 여러 사람의 의견으로 권두의 글을 명받으니, 감히 당치 않으나 또한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한마디 기록한다. 말하기를 "종족을 모아 책을 엮고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배포한다 해서 능히 할 일을 다 마쳤다 하겠는가?" 더 큰 것이 있으니, 조상의 마음공부(心法)를 배우고 조상의 덕스러운 업적을 기술하며,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종친과 화목하여, 이름난 조상의 손자로서 부끄러움이 없게 된 연후에야 족보를 닦는 의의가 완성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록 해마다 족보를 만들고 집에 간직한들 장차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 온 문중이 경계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모쪼록 서로 힘쓰고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단군기원 4315년(1982년) 임술 3월 일 후손 우대(宇大) 삼가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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