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8차보 다른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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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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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譜者 叙昭穆明彛倫 以敦親親之誼者也 以是心爲譜 孝悌之心 可以油然 而生矣 譜之爲重於人家 固如是也 惟我奇氏 數千載名公巨宰 繼世而作 柄耀史策 子姓又蕃衍 蔚然海東名族 世人稱吾奇獨高於古今者 殆無怪也 吾宗之譜自 顯宗五年甲辰 三百餘年之間 續修者 累矣 然尚有未盡之歎 派居於各鄕者 取約爲譜 所嘗記傳者 次聞見之同異 遂成岐貳之弊 盖根深 則枝茂 源遠則流長 固難免其混焉是以 其初則同出於一根源而莫辨其支流 兄弟或失序 叔姪或相錯 視之如秦越 奚可以講睦而致孝悌之道哉 識者之所 慨恨不己者也 柄樹一 自所任於大宗中以來 間嘗閱譜 遊迎宗親之際 頗有秦越之感而思欲統合修譜 爲爛漫同歸之計 五個星霜徒過 遂擅紀四三一四年辛酉三月三十一日大會 宗族於一堂 詢謀僉同 於是輪告於派門地域別組識 一齊收單 功始告竣 人將曰任司者之誠勤攸到而祖宗冥佑之力實多焉 所恨南北分疆 在北宗親未及統一於是役可期第有所感而 編修會長回出 常任委長南舒 編修部靈命 財務世殷 總務世豐 堅執不渝 始自收單 至於發刊 其爲賢勞 不尠故 兹敢表謝云爾
擅紀四三一五年壬戌四月 日 后孫 柄樹 跋
1982년-8차보-다른-발문-1
夫譜者, 叙昭穆, 明彛倫, 以敦親親之誼者也. 以是心爲譜, 則孝悌之心, 可以油然而生矣. 譜之爲重於人家, 固如是也.
惟我奇氏, 數千載名公巨宰, 繼世而作, 柄耀史策, 子姓又蕃衍, 蔚然爲海東名族. 世人稱吾奇獨高於古今者, 殆無怪也. 吾宗之譜, 自顯宗五年甲辰, 三百餘年之間, 續修者累矣, 然尚有未盡之歎. 派居於各鄕者, 取約爲譜, 所嘗記傳者, 次聞見之同異, 遂成岐貳之弊. 盖根深則枝茂, 源遠則流長, 固難免其混焉.
是以其初則同出於一根源而莫辨其支流, 兄弟或失序, 叔姪或相錯, 視之如秦越, 奚可以講睦而致孝悌之道哉! 識者之所慨恨不已者也.
柄樹自所任於大宗中以來, 間嘗閱譜. 遊迎宗親之際, 頗有秦越之感, 而思欲統合修譜, 爲爛漫同歸之計. 五個星霜徒過, 遂以檀紀四三一四年辛酉三月三十一日, 大會宗族於一堂, 詢謀僉同. 於是輪告於派門, 地域別組織, 一齊收單.
功始告竣, 人將曰任司者之誠勤攸到, 而祖宗冥佑之力實多焉. 所恨南北分疆, 在北宗親未及統一於 是役, 可期後日有所感而.
編修會長回出, 常任委長南舒, 編修部長靈命, 財務世殷, 總務世豐, 堅執不渝, 始自收單, 至於發刊, 其爲賢勞不尠. 故兹敢表謝云爾.
檀紀四三一五年壬戌四月 日 后孫 柄樹 跋
무릇 족보라는 것은 소목(昭穆, 조상의 차례)을 서술하고 인륜(彛倫)을 밝혀 친족끼리 서로 친애하는 정의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족보를 만든다면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기름지듯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것이다. 족보가 사람들의 집안에서 중하게 여겨짐이 진실로 이와 같다.
생각건대 우리 기씨(奇氏) 가문은 수천 년 동안 이름난 공신과 큰 재상들이 대를 이어 나타나 역사 책에 그 활약이 찬란히 빛나고 있으며, 자손들 또한 번성하여 해동(우리나라)의 명문거족으로 울창하게 자리 잡았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씨를 두고 고금을 통틀어 독보적으로 고결하다고 칭찬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 문중의 족보는 현종 5년 갑진년(1664년) 이래로 300여 년의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이어 고쳐왔으나, 오히려 아직 다하지 못한 아쉬움의 탄식이 남아 있었다.
각 고을에 흩어져 사는 파문들이 저마다 요약하여 족보를 만드니, 일찍이 기록하여 전해오던 바가 들은 견문의 다름에 따라 마침내 서로 갈라지고 어긋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대개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샘이 깊으면 물줄기가 길게 흐르는 법이니, 오랜 세월 속에 계통이 뒤섞이는 일은 진실로 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같이 나왔으면서도 그 갈라진 지류를 판별하지 못해, 형과 아우의 차례가 혹 바뀌기도 하고 숙질 간이 서로 착오가 생기기도 하여, 이들을 바라보기를 마치 나와 상관없는 진나라나 월나라 사람 보듯 하니, 어찌 화목을 다지고 효제(孝悌)의 도리를 지 지극히 이룰 수 있겠는가! 이는 뜻있는 식자들이 개탄하고 한탄해 마지않던 바였다.
저 병수(柄樹)가 대종회에서 소임을 맡은 이래로 간간이 족보를 열람해 보았다. 종친들을 두루 만나 교유하는 동안에 자꾸만 서로 소외감을 느끼는 '진월(秦越)의 감정'이 생겨나, 마침내 온 문중을 하나로 통합하여 완벽하게 한 뿌리로 돌아가게 할 대동의 계획을 세우고 통합 수보를 열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안 없이 다섯 번의 서리(5년의 세월)를 헛되이 보낸 끝에, 마침내 단기 4314년(1981년) 신유년 3월 31일에 온 종족을 한자리에 크게 모아 의견을 물으니 모두의 뜻이 같았다. 이에 각 파문과 연락을 취하고 지역별로 조직을 구성하여 일제히 단자(단수)를 거두어들였다.
이제 역사(족보 간행)를 시작하여 마침내 준공을 고하게 되니, 사람들은 장차 소임을 맡은 자들의 정성과 부지런함이 이른 결과라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조상님들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신 힘이 실로 컸던 덕분이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남북의 국토가 갈라져 있는 탓에 북한에 있는 종친들이 이번 역사에 미처 함께 합류하지 못한 점이다. 훗날을 기약하며 느끼는 바가 있어 기록해 둔다.
당시 편수회장이신 기회출(奇回出) 님, 상임위원장이신 기남서(奇南舒) 님, 편수부장이신 기영명(奇靈命) 님, 재무이신 기세은(奇世殷) 님, 총무이신 기세풍(奇世豐) 님께서 굳은 지조를 굽히지 않고 수단을 시작할 때부터 책을 발간할 때까지 보여주신 그 어질고 노고 가득한 정성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에 감히 감사의 뜻을 표하여 밝히는 바이다.
단기 4315년(1982년) 임술년 4월 일
후손 병수(柄樹) 삼가 발문을 쓰다.
擅紀四三一五年壬戌四月 日 后孫 柄樹 跋
1982년-8차보-다른-발문-1
夫譜者, 叙昭穆, 明彛倫, 以敦親親之誼者也. 以是心爲譜, 則孝悌之心, 可以油然而生矣. 譜之爲重於人家, 固如是也.
惟我奇氏, 數千載名公巨宰, 繼世而作, 柄耀史策, 子姓又蕃衍, 蔚然爲海東名族. 世人稱吾奇獨高於古今者, 殆無怪也. 吾宗之譜, 自顯宗五年甲辰, 三百餘年之間, 續修者累矣, 然尚有未盡之歎. 派居於各鄕者, 取約爲譜, 所嘗記傳者, 次聞見之同異, 遂成岐貳之弊. 盖根深則枝茂, 源遠則流長, 固難免其混焉.
是以其初則同出於一根源而莫辨其支流, 兄弟或失序, 叔姪或相錯, 視之如秦越, 奚可以講睦而致孝悌之道哉! 識者之所慨恨不已者也.
柄樹自所任於大宗中以來, 間嘗閱譜. 遊迎宗親之際, 頗有秦越之感, 而思欲統合修譜, 爲爛漫同歸之計. 五個星霜徒過, 遂以檀紀四三一四年辛酉三月三十一日, 大會宗族於一堂, 詢謀僉同. 於是輪告於派門, 地域別組織, 一齊收單.
功始告竣, 人將曰任司者之誠勤攸到, 而祖宗冥佑之力實多焉. 所恨南北分疆, 在北宗親未及統一於 是役, 可期後日有所感而.
編修會長回出, 常任委長南舒, 編修部長靈命, 財務世殷, 總務世豐, 堅執不渝, 始自收單, 至於發刊, 其爲賢勞不尠. 故兹敢表謝云爾.
檀紀四三一五年壬戌四月 日 后孫 柄樹 跋
무릇 족보라는 것은 소목(昭穆, 조상의 차례)을 서술하고 인륜(彛倫)을 밝혀 친족끼리 서로 친애하는 정의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족보를 만든다면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기름지듯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것이다. 족보가 사람들의 집안에서 중하게 여겨짐이 진실로 이와 같다.
생각건대 우리 기씨(奇氏) 가문은 수천 년 동안 이름난 공신과 큰 재상들이 대를 이어 나타나 역사 책에 그 활약이 찬란히 빛나고 있으며, 자손들 또한 번성하여 해동(우리나라)의 명문거족으로 울창하게 자리 잡았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씨를 두고 고금을 통틀어 독보적으로 고결하다고 칭찬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 문중의 족보는 현종 5년 갑진년(1664년) 이래로 300여 년의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이어 고쳐왔으나, 오히려 아직 다하지 못한 아쉬움의 탄식이 남아 있었다.
각 고을에 흩어져 사는 파문들이 저마다 요약하여 족보를 만드니, 일찍이 기록하여 전해오던 바가 들은 견문의 다름에 따라 마침내 서로 갈라지고 어긋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대개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샘이 깊으면 물줄기가 길게 흐르는 법이니, 오랜 세월 속에 계통이 뒤섞이는 일은 진실로 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같이 나왔으면서도 그 갈라진 지류를 판별하지 못해, 형과 아우의 차례가 혹 바뀌기도 하고 숙질 간이 서로 착오가 생기기도 하여, 이들을 바라보기를 마치 나와 상관없는 진나라나 월나라 사람 보듯 하니, 어찌 화목을 다지고 효제(孝悌)의 도리를 지 지극히 이룰 수 있겠는가! 이는 뜻있는 식자들이 개탄하고 한탄해 마지않던 바였다.
저 병수(柄樹)가 대종회에서 소임을 맡은 이래로 간간이 족보를 열람해 보았다. 종친들을 두루 만나 교유하는 동안에 자꾸만 서로 소외감을 느끼는 '진월(秦越)의 감정'이 생겨나, 마침내 온 문중을 하나로 통합하여 완벽하게 한 뿌리로 돌아가게 할 대동의 계획을 세우고 통합 수보를 열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안 없이 다섯 번의 서리(5년의 세월)를 헛되이 보낸 끝에, 마침내 단기 4314년(1981년) 신유년 3월 31일에 온 종족을 한자리에 크게 모아 의견을 물으니 모두의 뜻이 같았다. 이에 각 파문과 연락을 취하고 지역별로 조직을 구성하여 일제히 단자(단수)를 거두어들였다.
이제 역사(족보 간행)를 시작하여 마침내 준공을 고하게 되니, 사람들은 장차 소임을 맡은 자들의 정성과 부지런함이 이른 결과라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조상님들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신 힘이 실로 컸던 덕분이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남북의 국토가 갈라져 있는 탓에 북한에 있는 종친들이 이번 역사에 미처 함께 합류하지 못한 점이다. 훗날을 기약하며 느끼는 바가 있어 기록해 둔다.
당시 편수회장이신 기회출(奇回出) 님, 상임위원장이신 기남서(奇南舒) 님, 편수부장이신 기영명(奇靈命) 님, 재무이신 기세은(奇世殷) 님, 총무이신 기세풍(奇世豐) 님께서 굳은 지조를 굽히지 않고 수단을 시작할 때부터 책을 발간할 때까지 보여주신 그 어질고 노고 가득한 정성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에 감히 감사의 뜻을 표하여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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