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차 행주기씨대동보서幸州奇氏大同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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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9차-幸州奇氏大同譜序
夫宗族者, 異派同根, 百世同譜. 上而推敍昭穆, 永切孝思; 下而分別親疏, 各有等殺. 骨肉贊美, 彰明懿親, 生相親愛, 死相哀痛, 排難恤孤, 恩以亢宗. 所以麟趾振振, 紀理族인也.
吾奇氏肇自殷師受命東國, 敬敷條敎, 恢張四維. 風偃於邦家, 湊仁于黎元以來. 唯我先祖虔承德敎, 操存守仁, 孝友廉白而道匡雅俗; 奕世忠義而鑱名泰華; 發明經術而卓立千古; 德流子孫而高秩厚禮. 則至於敬義之所服, 精意之所感. 其休德清英, 淑聲餘裕, 久而彌劭, 拳拳而不能自己者焉.
噫! 享於祖考, 報本反始, 修先以崇恩, 人子之追孝야. 露濡霜降, 必有悽愴怵惕之心, 罔不流涕. 雲物變采, 井泉湧發, 蓋天性之所感. 而況於顯顯令德, 皇皇賢祖, 百代不遷, 祠事孔修, 尊祖以致享, 奉先以盡禮者哉!
第念歷三韓、羅麗, 迄近朝鮮, 碩果之報, 冥理不誣. 忠孝志節, 道德文章, 或父子趾美, 或兄弟聯懿, 洋洋有餘也.
兹者, 顯中祖貞武公, 清白高潔, 盖頭葬親, 杏林厲人, 鯽鰒不食; 莊陵慘惻, 青盲立節, 啓沃上疏, 可謂合陸宣公、胡澹菴、伏龍、鳳雛이爲一人者, 昭光于汗青.
貞烈公, 繩其祖武, 燕翼貽謀.
文愍公, 幼而徇齊, 桂林一枝, 己卯士禍, 投荒賦鵬, 遺芳千載, 世稱己卯名賢.
文憲公, 生而神俊, 志學洛閩, 修文經術, 蹈德詠仁, 侍講論思, 守義明經, 縉紳咸望之如景星鳳凰.
晚全堂相國公, 班朝鷺序, 羽儀輔衮, 託寄永昌, 若周公之臨大節, 閉門把節, 竟殺身以成仁.
文簡公, 生知神童, 過目皆憶, 百氏珠貫, 接洙泗之淵源, 傳尼山之鉢衣也.
以上六位昭穆, 躋書院而昭升, 嚴配時祀, 薦饗廟學. 因時聚衆, 有敎學興禮, 崇祖厲賢, 移風易俗. 其餘賢祖, 稍有未安, 理勢不得已也.
余新譜入梓臨迫之際, 秠述書院之原委, 當就其布帛菽粟而盡心焉. 使後來裔孫, 周知其指趣, 崇祖報功之心, 油然勃興以然也.
嗟乎! 世遠人亡, 經殘敎弛, 異端左道, 風俗退敗. 聚麀亂倫之風謑髁, 無任敦倫睦族之心, 日益弛緩. 故厥或一部宗親, 未能識修譜之義, 收族處事, 或怠惰偸儒爲安, 或微門冷族, 丱童無知爲事. 荏苒經年, 遷延其有修譜之役, 安得無戚戚於中哉!
然而尚幸大宗中幹翼與各派門中有司, 子來協贊, 勞效告迄. 余序其修譜, 藉口以駘背昏耄, 有所不敢閣筆, 遂敢妄論如右. 其他餘事, 閎衍侈奢, 故不復致詳于贅言也.
檀紀四三三六年 癸未 仲冬 幸州奇氏大宗中會長 世勳 謹序
무릇 종족(宗族)이라는 것은 파는 다르나 근본은 하나이며, 백세토록 동의하는 하나의 족보를 갖는 것이다. 위로는 소목(昭穆, 조상의 순서)을 미루어 서술하여 조상을 효성스럽게 추모하는 마음을 영원히 간절히 하고, 아래로는 친하고 소원함을 분별하여 각각의 멀고 가까운 차등을 두는 것이다. 골육 간에 서로 찬미하고 훌륭한 친족을 밝히며, 살아생전에는 서로 친애하고 죽어서는 서로 애통해하며, 어려움을 배척하고 고아를 구휼하여 은혜로써 가문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손이 번성하는 ‘린지(麟趾)’의 도리를 떨치고 족인들을 다스리는 법도이다.
우리 기씨(奇氏)는 은나라의 태사이신 기자(箕子)께서 동방(조선)에 명을 받으신 이래로, 조항과 교화를 공경히 펴시고 인륜의 기강을 넓히셨다. 그리하여 나라에 풍교(風敎)가 내리고 백성들에게 인(仁)이 모여든 이래로, 오직 우리 선조들께서德敎(德敎)를 경건히 이어받으셨다. 마음을 잡고 인을 지키며, 효도하고 우애하며, 청렴하고 결백하여 그 도리로써 세속의 풍속을 바르게 교정하셨다. 대대로 충의를 다하여 태산과 화산에 이름을 새기셨고, 경술(經術)을 발명하여 천고에 탁월하게 자립하셨으며, 덕이 자손에게 흘러 높은 관직과 두터운 예우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경(敬)과 의(義)가 복종하는 바와 지극한 정성이 감동하는 바에 이르렀으니, 그 아름다운 덕의 맑고 영특함과 어진 명성의 넉넉한 여운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사모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아!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는 것은 근본에 보답하고 시작으로 돌아가는 일(報本反始)이며, 선조를 기려 그 은혜를 숭상하는 것이니, 이는 자식 된 자가 효도를 쫓는 길이다. 이슬이 적시고 서리가 내릴 때면(露濡霜降) 반드시 슬프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구름과 만물의 색채가 변하고 우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은 대개 천성에서 감동하는 바인데, 하물며 뚜렷하고 아름다운 덕을 지니신 황황하신 현명한 조상님들을 백대토록 옮기지 않는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성대히 받들며, 조상을 존경하여 제사를 올리고 선조를 받들어 예법을 다함에 있어서야 오죽하겠는가!
다만 생각건대, 삼한과 신라, 고려를 거쳐 최근의 조선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쌓은 덕의 열매로 후손이 복을 받는 ‘석과의 보답’이라는 저승의 이치는 속임이 없다. 충효와 지절,道德과 文章에 있어서 혹은 아버지가 아름다운 자취를 밟으면 아들이 이어가고, 혹은 형제가 아름다움을 나란히 하여 가문의 영광이 풍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제 현조들을 살펴보면, 중조(中祖)이신 정무공(貞武公, 기건)께서는 청백하고 고결하시어, 눈을 가리고 부모의 상을 치르셨고(盖頭葬親), 살구 수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셨으며(杏林厲人), 벼슬길에 물러나서는 조기와 전복을 먹지 않으셨다. 단종(莊陵)의 참혹한 죽음에 마음 아파하시며 눈먼 장님인 체하며 절개를 지키셨고(青盲立節),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이끄는 상소를 올리셨으니, 가히 당나라의 육선공(陸宣公)과 송나라의 호담암(胡澹菴), 그리고 제갈량(伏龍)과 방통(鳳雛)을 합쳐 한 사람으로 만든 듯하여 그 이름이 역사(汗青)에 찬란히 빛나고 계신다.
정렬공(貞烈公, 기찬)께서는 그 조상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으시어(繩其祖武), 후손들을 도모하는 훌륭한 계책을 남겨주셨다.
문민공(文愍公, 기효간)께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셨고 가문의 큰 인재이셨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당하여 거친 변방으로 유배 가셔서 〈부鵬조부(賦鵬)〉를 지으시며 맑은 향기를 천재에 남기셨으니, 세상에서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 일컫는다.
문헌공(文憲公, 기대승)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비롭고 준수하셨으며, 주자와 정자의 학문(洛閩)에 뜻을 두어 문학과 경술을 닦으셨고, 덕을 밟고 인을 읊조리셨다. 임금에게 학문을 모시고 토론하셨으며, 의리를 지키고 경전에 밝으시니, 모든 선비와 고관(縉紳)들이 서기 어린 별과 봉황(景星鳳凰)을 바라보듯 우러러보았다.
만전당 상국공(晚全堂 相國公, 기자헌)께서는 조정의 반열(鷺序)에 올라 임금을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가 되셨고, 광해군 시절 영창대군을 영원히 보호하라는 탁시를 받드셨으니, 마치 주공(周公)이 큰 대절에 임한 듯하셨다. 문을 닫아걸고 절개를 지키시며 마침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의를 이루셨다.
문간공(文簡公, 기정진)께서는 나면서부터 아시는 신동이시라 눈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모두 기억하셨고, 백가(百家)의 학문을 구슬을 꿰듯 꿰뚫으셨으니, 공자와 맹자의 학문(洙泗)의 원연에 접하시고 주자의 도통(尼山之鉢衣)을 전해 받으셨다.
이상의 여섯 분의 소목(昭穆) 지위는 서원(書院)에 모셔져 밝게 오르셨으며, 철저한 예법에 따라 철마다 제사를 받들고 사당과 학당에 음식을 올리고 있다. 때에 맞추어 문중들이 모여 학문을 가르치고 예절을 일으키며, 조상을 숭상하고 현인을 격려하여 풍속을 바꾸고 세속을 변화시키고 있으니, 그 외의 다른 현조들께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이치와 형세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새로운 족보를 인쇄(入梓)하기 직전에 이르러 대략 서원의 원위(原委)를 서술하는 것은, 마땅히 입는 옷과 먹는 양식처럼 친근하고 긴요한 일에 마음을 다하고자 함이다. 뒤에 오는 후손들로 하여금 그 취지를 두루 알게 하여, 조상을 숭상하고 그 공덕에 보답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기름지듯 힘차게 일어나게 하려는 까닭이다.
슬프도다! 세대는 멀어지고 옛 어른들은 돌아가셨으며, 경전은 파괴되고 가르침은 느슨해져서, 이단과 사악한 도가 판을 치고 풍속이 퇴폐해졌다. 인륜을 어지럽히는 부끄러운 풍조가 만연하여 인륜을 돈독히 하고 씨족을 화목하게 하려는 마음이 나날이 느슨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혹 어떤 일부 종친들은 족보를 수정하는 대의를 알지 못하여, 일족을 거두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혹 게으르고 구차하게 편안함만을 취하기도 하며, 혹은 미약하고 냉대받는 가문이라 하여 무지한 아이들의 장난처럼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아까운 세월을 흐지부지 보내며 족보를 수정하는 역사를 미루어 왔으니, 어찌 내 마음속에 슬프고 탄식스러운 마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다행스럽게도 대종회의 여러 간부들과 각 파문의 유사(有司)들께서 자식들이 부모의 일에 달려오듯 기쁘게 협찬하여 주신 덕분에, 마침내 노고의 보람으로 가쁜 결실을 고하게 되었다. 내가 이 족보의 수정을 축하하며 서문을 쓰게 됨에 있어서, 비록 늙고 혼미하다는 핑계(駘背昏耄)로 감히 붓을 꺾지 못하고 마침내 망령되이 위와 같이 논하게 되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너무나 방대하고 번잡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말로 다시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단기 4336년(2003년) 계미년 동지달(11월)
행주기씨 대종중 회장 세훈(世勳) 삼가 서문을 쓰다.
夫宗族者, 異派同根, 百世同譜. 上而推敍昭穆, 永切孝思; 下而分別親疏, 各有等殺. 骨肉贊美, 彰明懿親, 生相親愛, 死相哀痛, 排難恤孤, 恩以亢宗. 所以麟趾振振, 紀理族인也.
吾奇氏肇自殷師受命東國, 敬敷條敎, 恢張四維. 風偃於邦家, 湊仁于黎元以來. 唯我先祖虔承德敎, 操存守仁, 孝友廉白而道匡雅俗; 奕世忠義而鑱名泰華; 發明經術而卓立千古; 德流子孫而高秩厚禮. 則至於敬義之所服, 精意之所感. 其休德清英, 淑聲餘裕, 久而彌劭, 拳拳而不能自己者焉.
噫! 享於祖考, 報本反始, 修先以崇恩, 人子之追孝야. 露濡霜降, 必有悽愴怵惕之心, 罔不流涕. 雲物變采, 井泉湧發, 蓋天性之所感. 而況於顯顯令德, 皇皇賢祖, 百代不遷, 祠事孔修, 尊祖以致享, 奉先以盡禮者哉!
第念歷三韓、羅麗, 迄近朝鮮, 碩果之報, 冥理不誣. 忠孝志節, 道德文章, 或父子趾美, 或兄弟聯懿, 洋洋有餘也.
兹者, 顯中祖貞武公, 清白高潔, 盖頭葬親, 杏林厲人, 鯽鰒不食; 莊陵慘惻, 青盲立節, 啓沃上疏, 可謂合陸宣公、胡澹菴、伏龍、鳳雛이爲一人者, 昭光于汗青.
貞烈公, 繩其祖武, 燕翼貽謀.
文愍公, 幼而徇齊, 桂林一枝, 己卯士禍, 投荒賦鵬, 遺芳千載, 世稱己卯名賢.
文憲公, 生而神俊, 志學洛閩, 修文經術, 蹈德詠仁, 侍講論思, 守義明經, 縉紳咸望之如景星鳳凰.
晚全堂相國公, 班朝鷺序, 羽儀輔衮, 託寄永昌, 若周公之臨大節, 閉門把節, 竟殺身以成仁.
文簡公, 生知神童, 過目皆憶, 百氏珠貫, 接洙泗之淵源, 傳尼山之鉢衣也.
以上六位昭穆, 躋書院而昭升, 嚴配時祀, 薦饗廟學. 因時聚衆, 有敎學興禮, 崇祖厲賢, 移風易俗. 其餘賢祖, 稍有未安, 理勢不得已也.
余新譜入梓臨迫之際, 秠述書院之原委, 當就其布帛菽粟而盡心焉. 使後來裔孫, 周知其指趣, 崇祖報功之心, 油然勃興以然也.
嗟乎! 世遠人亡, 經殘敎弛, 異端左道, 風俗退敗. 聚麀亂倫之風謑髁, 無任敦倫睦族之心, 日益弛緩. 故厥或一部宗親, 未能識修譜之義, 收族處事, 或怠惰偸儒爲安, 或微門冷族, 丱童無知爲事. 荏苒經年, 遷延其有修譜之役, 安得無戚戚於中哉!
然而尚幸大宗中幹翼與各派門中有司, 子來協贊, 勞效告迄. 余序其修譜, 藉口以駘背昏耄, 有所不敢閣筆, 遂敢妄論如右. 其他餘事, 閎衍侈奢, 故不復致詳于贅言也.
檀紀四三三六年 癸未 仲冬 幸州奇氏大宗中會長 世勳 謹序
무릇 종족(宗族)이라는 것은 파는 다르나 근본은 하나이며, 백세토록 동의하는 하나의 족보를 갖는 것이다. 위로는 소목(昭穆, 조상의 순서)을 미루어 서술하여 조상을 효성스럽게 추모하는 마음을 영원히 간절히 하고, 아래로는 친하고 소원함을 분별하여 각각의 멀고 가까운 차등을 두는 것이다. 골육 간에 서로 찬미하고 훌륭한 친족을 밝히며, 살아생전에는 서로 친애하고 죽어서는 서로 애통해하며, 어려움을 배척하고 고아를 구휼하여 은혜로써 가문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손이 번성하는 ‘린지(麟趾)’의 도리를 떨치고 족인들을 다스리는 법도이다.
우리 기씨(奇氏)는 은나라의 태사이신 기자(箕子)께서 동방(조선)에 명을 받으신 이래로, 조항과 교화를 공경히 펴시고 인륜의 기강을 넓히셨다. 그리하여 나라에 풍교(風敎)가 내리고 백성들에게 인(仁)이 모여든 이래로, 오직 우리 선조들께서德敎(德敎)를 경건히 이어받으셨다. 마음을 잡고 인을 지키며, 효도하고 우애하며, 청렴하고 결백하여 그 도리로써 세속의 풍속을 바르게 교정하셨다. 대대로 충의를 다하여 태산과 화산에 이름을 새기셨고, 경술(經術)을 발명하여 천고에 탁월하게 자립하셨으며, 덕이 자손에게 흘러 높은 관직과 두터운 예우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경(敬)과 의(義)가 복종하는 바와 지극한 정성이 감동하는 바에 이르렀으니, 그 아름다운 덕의 맑고 영특함과 어진 명성의 넉넉한 여운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사모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아!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는 것은 근본에 보답하고 시작으로 돌아가는 일(報本反始)이며, 선조를 기려 그 은혜를 숭상하는 것이니, 이는 자식 된 자가 효도를 쫓는 길이다. 이슬이 적시고 서리가 내릴 때면(露濡霜降) 반드시 슬프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구름과 만물의 색채가 변하고 우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은 대개 천성에서 감동하는 바인데, 하물며 뚜렷하고 아름다운 덕을 지니신 황황하신 현명한 조상님들을 백대토록 옮기지 않는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성대히 받들며, 조상을 존경하여 제사를 올리고 선조를 받들어 예법을 다함에 있어서야 오죽하겠는가!
다만 생각건대, 삼한과 신라, 고려를 거쳐 최근의 조선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쌓은 덕의 열매로 후손이 복을 받는 ‘석과의 보답’이라는 저승의 이치는 속임이 없다. 충효와 지절,道德과 文章에 있어서 혹은 아버지가 아름다운 자취를 밟으면 아들이 이어가고, 혹은 형제가 아름다움을 나란히 하여 가문의 영광이 풍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제 현조들을 살펴보면, 중조(中祖)이신 정무공(貞武公, 기건)께서는 청백하고 고결하시어, 눈을 가리고 부모의 상을 치르셨고(盖頭葬親), 살구 수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셨으며(杏林厲人), 벼슬길에 물러나서는 조기와 전복을 먹지 않으셨다. 단종(莊陵)의 참혹한 죽음에 마음 아파하시며 눈먼 장님인 체하며 절개를 지키셨고(青盲立節),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이끄는 상소를 올리셨으니, 가히 당나라의 육선공(陸宣公)과 송나라의 호담암(胡澹菴), 그리고 제갈량(伏龍)과 방통(鳳雛)을 합쳐 한 사람으로 만든 듯하여 그 이름이 역사(汗青)에 찬란히 빛나고 계신다.
정렬공(貞烈公, 기찬)께서는 그 조상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으시어(繩其祖武), 후손들을 도모하는 훌륭한 계책을 남겨주셨다.
문민공(文愍公, 기효간)께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셨고 가문의 큰 인재이셨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당하여 거친 변방으로 유배 가셔서 〈부鵬조부(賦鵬)〉를 지으시며 맑은 향기를 천재에 남기셨으니, 세상에서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 일컫는다.
문헌공(文憲公, 기대승)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비롭고 준수하셨으며, 주자와 정자의 학문(洛閩)에 뜻을 두어 문학과 경술을 닦으셨고, 덕을 밟고 인을 읊조리셨다. 임금에게 학문을 모시고 토론하셨으며, 의리를 지키고 경전에 밝으시니, 모든 선비와 고관(縉紳)들이 서기 어린 별과 봉황(景星鳳凰)을 바라보듯 우러러보았다.
만전당 상국공(晚全堂 相國公, 기자헌)께서는 조정의 반열(鷺序)에 올라 임금을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가 되셨고, 광해군 시절 영창대군을 영원히 보호하라는 탁시를 받드셨으니, 마치 주공(周公)이 큰 대절에 임한 듯하셨다. 문을 닫아걸고 절개를 지키시며 마침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의를 이루셨다.
문간공(文簡公, 기정진)께서는 나면서부터 아시는 신동이시라 눈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모두 기억하셨고, 백가(百家)의 학문을 구슬을 꿰듯 꿰뚫으셨으니, 공자와 맹자의 학문(洙泗)의 원연에 접하시고 주자의 도통(尼山之鉢衣)을 전해 받으셨다.
이상의 여섯 분의 소목(昭穆) 지위는 서원(書院)에 모셔져 밝게 오르셨으며, 철저한 예법에 따라 철마다 제사를 받들고 사당과 학당에 음식을 올리고 있다. 때에 맞추어 문중들이 모여 학문을 가르치고 예절을 일으키며, 조상을 숭상하고 현인을 격려하여 풍속을 바꾸고 세속을 변화시키고 있으니, 그 외의 다른 현조들께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이치와 형세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새로운 족보를 인쇄(入梓)하기 직전에 이르러 대략 서원의 원위(原委)를 서술하는 것은, 마땅히 입는 옷과 먹는 양식처럼 친근하고 긴요한 일에 마음을 다하고자 함이다. 뒤에 오는 후손들로 하여금 그 취지를 두루 알게 하여, 조상을 숭상하고 그 공덕에 보답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 기름지듯 힘차게 일어나게 하려는 까닭이다.
슬프도다! 세대는 멀어지고 옛 어른들은 돌아가셨으며, 경전은 파괴되고 가르침은 느슨해져서, 이단과 사악한 도가 판을 치고 풍속이 퇴폐해졌다. 인륜을 어지럽히는 부끄러운 풍조가 만연하여 인륜을 돈독히 하고 씨족을 화목하게 하려는 마음이 나날이 느슨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혹 어떤 일부 종친들은 족보를 수정하는 대의를 알지 못하여, 일족을 거두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혹 게으르고 구차하게 편안함만을 취하기도 하며, 혹은 미약하고 냉대받는 가문이라 하여 무지한 아이들의 장난처럼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그렇게 아까운 세월을 흐지부지 보내며 족보를 수정하는 역사를 미루어 왔으니, 어찌 내 마음속에 슬프고 탄식스러운 마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다행스럽게도 대종회의 여러 간부들과 각 파문의 유사(有司)들께서 자식들이 부모의 일에 달려오듯 기쁘게 협찬하여 주신 덕분에, 마침내 노고의 보람으로 가쁜 결실을 고하게 되었다. 내가 이 족보의 수정을 축하하며 서문을 쓰게 됨에 있어서, 비록 늙고 혼미하다는 핑계(駘背昏耄)로 감히 붓을 꺾지 못하고 마침내 망령되이 위와 같이 논하게 되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너무나 방대하고 번잡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말로 다시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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